[특파원 칼럼/구자룡]흐려지는 홍콩 ‘일국양제’의 불빛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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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선 불법 단체로 인터넷 검색도 차단된 ‘파룬궁’이 홍콩에서는 합법적으로 활동한다. 매년 7월 1일 홍콩 섬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대규모 민주화시위가 벌어지고, 최근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도 홍콩에서 결성됐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지만 말 그대로 중국 속의 ‘특별행정구’이다. 중국과 영국 간 합의로 채택한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적용돼 2047년까지 50년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는다.

중국 지도부의 권력 투쟁을 파헤치거나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책을 팔아온 홍콩 섬 ‘퉁뤄완(銅(나,라)灣·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5명의 실종 사건이 홍콩의 일국양제를 시험하고 있다. 태풍의 눈에는 서점 점장 린룽지(林榮基·람윙키·61) 씨가 있다.

린 씨와 서점 모회사의 주주이자 이사인 뤼보(呂波), 업무 담당 경리 장즈핑(張志平) 씨와 서점 직원 구이민하이(桂敏海) 씨 등 4명이 지난해 10월 광둥 성 선전과 태국 파타야 등에서 갑자기 ‘실종’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30일 서점 대주주인 리보(李波) 씨가 홍콩에서 사라지면서 ‘서점 관계자 실종 사건’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이 중국 당국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올 2월 처음 확인됐다. 하지만 뤼보, 리보, 장즈핑 씨 등 3명은 올 3월 홍콩에 돌아온 뒤에도 자신들이 어떻게 실종돼 조사를 받았는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구이민하이 씨는 아직 중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4일 실종 8개월 만에 홍콩으로 돌아온 린 씨가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중국 당국에 억류됐고, 조사받았는지 폭로했다. 린 씨는 특히 리보 씨가 홍콩에서 중국 당국에 연행됐다고 밝혀 중국이 ‘홍콩기본법’을 위반했는지가 논란이 됐다. 홍콩에서는 항의 시위도 이어졌다.

린 씨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중국 선전에 갔다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연행돼 조사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점 고객 명단이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오는 조건으로 석방돼 홍콩으로 왔지만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면서 “홍콩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이자 일국양제 위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에 린 씨는 일약 일국양제 수호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린 씨를 연행해 조사했던 저장 성 닝보 시 공안당국은 급기야 5일 린 씨가 대륙으로 돌아와 조사받지 않으면 형사 처벌에 나설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린 씨는 며칠 전부터 누군가로부터 미행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린 씨는 홍콩 반환일인 1일 열린 민주화 요구 행진에도 참여하지 않고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이 대륙으로 돌아와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피의자’를 홍콩 경찰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이 중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도 린 씨를 계속 보호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중국 당국과 린 씨 개인 간 문제로 시작된 이번 사건에 홍콩 당국도 개입되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5일 앞으로 홍콩이나 중국에서 상대방 주민을 형사 조사하는 경우 14일 내로 통보해 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발등의 불인 ‘린 씨 신병’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서점 관계자 실종 사건은 홍콩의 ‘특별행정구’ 지위가 법적으로는 31년 남았지만 일국양제가 이미 한 귀퉁이씩 무너져 ‘아시아의 진주’ 홍콩의 불빛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홍콩#린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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