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지 40시간 뒤인 17일 오후 3시(현지 시간) 터키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만난 유수프 씨(62)는 대형 터키 국기를 손에 쥐고 이렇게 말했다. 탁심 광장에는 쿠데타 직후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몰려나와 친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쿠데타 이후 3일 연속 거리에 나섰다는 그는 “쿠데타는 대통령을 해치려는 귈렌(재미 이슬람 성직자)이 계획했다고 믿는다”며 “터키 국민이라면 대통령을 지지하며 이 국기 아래 하나로 응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은 탁심 광장에는 더운 대낮이었는데도 터키 깃발을 들거나 몸에 두르고 활보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터키에서는 15일 밤 갑작스레 벌어졌다가 ‘6시간 천하’로 끝난 쿠데타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설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대로 미국으로 망명한 반대 세력 귈렌이 막후에서 군부 내 자기 세력에게 시켜 쿠데타를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반면 젊은층에선 이번 쿠데타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뉴스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상황에서 쿠데타 진압 과정이 너무나 생생하고 신속하게 보도됐기 때문이다.
제3의 시각으로는 군부 내 친정부 세력이 반(反)정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에 함께 참여할 것처럼 미끼를 놓고선 자신들은 쏙 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군부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후 터키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민주 체제를 수호하게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대대적인 ‘피의 숙청’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13년의 집권 기간에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철퇴를 가해 왔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를 빌미로 정적 제거와 권력 강화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터키 정부는 16일 쿠데타 시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과 군인, 경찰 등 총 265명이 숨지고 144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민간인과 경찰이 161명이었으며 쿠데타 가담자 104명이 교전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군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터키 정부는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 베키르 보즈다 법무장관은 17일 국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쿠데타와 관련해 6000여 명을 구금했다”며 “앞으로 체포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보즈다 장관은 또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판사 2700여 명이 해임됐다고 밝혔다.
쿠데타 발생 당시 터키 내 서부지역 이즈미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새벽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연설을 통해 “(쿠데타 관련자들은) 반역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신의 선물(gift from God)’이라고 부르며 “군에 남아 있는 불순 세력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대적인 숙군(肅軍) 계획을 밝힌 것으로 군에 자기 세력을 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회가 사형제 도입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형제 부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터키 정부가 이처럼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쿠데타 시도를 비난하고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했던 국제사회는 “피의 보복은 안 된다”며 에르도안 정권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터키의 모든 당사자가 법치주의에 따라 행동을 하고 추가 폭력이나 불안정을 야기할 어떤 행동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터키 정부의 현직 관료인 쉴레이만 소일루 노동장관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즉각 반박하는 등 양국 관계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케리 장관은 “미국 배후설은 완전히 거짓”이라며 “이런 주장은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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