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기자의 필담]이창위 “독도 이어도에 시설물 건축 자제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8일 03시 00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해양법학회장 이창위

국제해양법 전문가인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세기까지는 ‘해군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는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양 강대국이 해양법 질서를 선도하고 연안국들은 그에 따라 왔다”며 “하지만 21세기 해양 질서에서는 모든 국가가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바다의 헌법’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제해양법 전문가인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세기까지는 ‘해군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는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양 강대국이 해양법 질서를 선도하고 연안국들은 그에 따라 왔다”며 “하지만 21세기 해양 질서에서는 모든 국가가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바다의 헌법’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진영 기자
이진영 기자
세계 해양사에 크게 남을 기념비적인 결정이다. 12일 유엔해양법협약 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중국과 필리핀이 다툰 남중국해 분쟁 사건에 내린 중재판정 말이다. 중국 정부가 국제법정에 불려나온 것부터가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바다의 무법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약소국인 필리핀에 완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영유권 주장의 출발점이 되는 ‘섬’에 관한 해석은 독도와 이어도를 놓고 중국 일본과 신경전을 벌이는 한국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5일 오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을 찾았을 때 이창위 교수(57)는 479쪽짜리 결정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무법자처럼 행동하던 중국에 작심하고 법의 철퇴를 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해양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해양 분쟁 담당 부처인 외교부와 해양수산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무법자처럼 굴다 철퇴맞은 중국"

―뉴욕타임스는 이 중재판정에 대해 ‘중국을 응징하다(chastise)’라고 표현했더군요.


“중국이 지금까지 남중국해에서 주장하고 활동해온 것들의 국제법적인 근거를 일거에 무너뜨린 거죠. 한마디로 남중국해는 중국도, 누구의 것도 아닌 공해(公海)이니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선언한 겁니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중국이 주장한 9단선이 무효이고, 남중국해의 중심인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 군도)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할 만한 섬이 없으며,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해양환경을 훼손하고 필리핀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매립으로 암석이나 간조 노출지를 섬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재판관들이 작심한 것 같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무력행사를 막자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남중국해가 공해라면 우리에게도 유리한 판정이네요.

“그렇죠. 한국은 거의 모든 에너지 자원이 이곳을 통해 들어옵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지지할 수밖에 없어요.”

―재판관 5명이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나오리라 예상했나요.

“이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9단선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이 9단선에 대해 EEZ를 갖는다고 명확하게 주장하지 않고 있거든요. 중재재판은 양쪽이 모두 동의해야 열 수 있습니다. 2013년 1월 필리핀이 제소하고, 2014년 12월 중국 외교부가 응소(應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중재재판소가 이걸 응한 걸로 해석하고 재판이 성립된다고 결정했습니다. 중국으로선 억울한 부분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9단선을 인정하면 남중국해의 90%, 멕시코 크기만 한 바다가 중국의 해역이 되는 건데 중국의 억지가 심한 것 아닌가요.

“중국이 가장 잘못한 게 그겁니다. 2009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대륙붕 범위 신청에 반대해 처음으로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에 9단선을 포함한 지도를 제출했어요. 아세안 국가들이 황당해하면서 그때부터 9단선이 유엔해양법협약에 맞는 것인지 따지기 시작했죠.”

―중재결정의 이행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제법의 실패’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면 이번 결정이 향후 협상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습니다. 골대를 필리핀 같은 약소 연안국들 쪽으로 움직여 놓은 효과가 있다는 거죠. 앞으로 남중국해 분쟁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현실적으로 중국이 중재판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명분도 중요합니다. 판정을 이행하라, 인공섬을 철수하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과 베트남은 중국이 밉지만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어 중국과 공동개발 방향으로 갈 겁니다. 미중의 해양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증폭될 테죠.”

―중국은 중재재판소가 ‘필리핀의 돈을 받았다’며 중립성을 의심합니다.

“원래 중재재판은 양쪽이 절반씩 부담하는 건데, 중국이 내지 않으니 필리핀이 다 부담한 겁니다.”

“남중국해는 주인 없는 公海”

―남중국해는 자원이 풍부한 데다 세계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분쟁의 역사도 길겠네요.

“과거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의 연장선에서 항해 문제로 대립하던 곳입니다. 그러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프랑스와 동남아를 침략한 일본 사이에서 1930년대 이후 영유권 분쟁이 시작됐죠. 1960년대 후반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양 분쟁이 본격화했고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남중국해 연안국들은 수많은 도서의 영유권을 다퉈 왔습니다. 중국은 베트남과의 무력충돌을 통해 1974년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西沙 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1988년엔 존슨사우스 암초(중국명 츠과자오·赤瓜礁)를 점령했습니다. 1994년부터는 필리핀 쪽 해역에 진출해 2012년 스카버러 숄에서 심각한 어업 분쟁을 일으킵니다. 중국이 암석과 간조 노출지를 집중 매립해 기지를 건설하고, 불법 조업하고…. 필리핀이 오죽했으면 제소했겠습니까.”

―왜 중국은 무리한 해양 정책을 펴는 걸까요.


“해양법의 역사는 자유로운 해양의 이용을 주장하는 해양 강대국과 약소 연안국 그룹 간의 갈등사입니다. 중국은 대표적 연안국이었다가 해양 강대국으로 지위가 바뀌었어요. 대륙국인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해양을 통해 침략을 당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국의 해양 패권에 반대했어요. 필리핀 베트남처럼 연안국의 해양 관할권 확대를 지지했죠. 그러다 강대국으로 입장이 바뀌면서 무리한 해양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그게 결정적 패착이 된 겁니다.”

―이번 판정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섬에 관한 해석인데요. 남중국해에 도서(島嶼)가 200개가 넘는데, 섬으로 인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남중국해엔 150∼200개의 도서가 있습니다. 700개라는 설도 있어요. 대부분 암석이나 암초여서 옛날부터 항해하기 위험한 지역으로 꼽혔습니다. 도서나 암초의 이름을 그곳에서 좌초한 배의 이름을 따 지을 정도였죠. 그런데 이번 결정에선 스프래틀리 제도에 EEZ를 가질 수 있는 섬이 없다고 해석한 겁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타이핑다오(太平島·영문명 이투아바)마저 섬이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부분은 충격적입니다. 타이핑다오는 대만이 실효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남중국해는 공해가 됐기 때문에 이제 각 연안국은 대륙붕의 범위를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상대국과 해양 경계 획정을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합니다.”

“무조건적 해양개발 시대 끝났다”

―타이핑다오가 섬이 아니면 독도도 섬이 아닌 건가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섬은 사람이 거주하고 독자적 경제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재재판소는 이번에 해양경찰과 같은 공무원은 거주민이 아닌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섬에 대해 까다롭게 규정한 판례를 남긴 거지요. 이 기준을 따른다면 독도는 섬이 아니라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입니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해양환경 훼손이라는 대목에서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가 떠올랐습니다. 이어도의 시설물도 문제가 될 수 있나요.

“이어도 기지는 해양과학기지이기 때문에 중국이 환경 훼손을 이유로 시비를 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에서 독도에 호텔을 짓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함부로 인공 시설물을 지을 경우 일본이 해양환경 훼손을 이유로 제소할 수 있습니다. 독도나 이어도 모두 분쟁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서해의 불법 어업 문제나 한중 간 서해 해양 경계 협상에서 중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바다에는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바다의 헌법’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한층 강해졌는데 이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특히 서해에서 중국 측의 불법 어업 문제를 다룰 때 그런 부분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남중국해든 서해든 불법 어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중국이네요.

“선진국은 인건비가 비싸 불법 조업을 못하죠. 국제회의장에 가보면 중국에 피해받은 나라들끼리 국제기구를 만들자, 중국의 불법 조업 영상을 유엔에 가서 보여주자 이런 얘기들도 나옵니다.”

―우리 시각에서 필리핀의 승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국제해양법을 이용해 중국에 맞선 필리핀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한국은 전통적 해양 강대국인 일본과 신흥 해양 강대국인 중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변의 해양 경계는 일부를 제외하고 획정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관할 수역을 최대한 확보하고 독도나 이어도 해역을 굳건히 지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21세기는 무조건적인 해양 개발의 시대가 아닙니다. 해양에서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국가만이 해양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 용어 ::
 
9단선(九段線)=중국이 남중국해의 관할권 경계를 표시한 9개의 점선. 중국은 9단선에 근거해 남중국해 전체의 90%가 자국의 해역이라고 주장해 왔다.

영해(領海)=연안국의 주권이 미치는 해역.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2해리까지 인정.

배타적 경제수역(EEZ)=경제주권이 인정되는 수역으로 200해리까지 인정.

대륙붕=육지에 인접한 해저와 하층토로 350해리나 2500m 등심선에서 100해리까지 인정.

해양 지형=수중 암초, 간조 노출지(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잠기는 땅), 암석, 섬 등 4가지로 구분한다. 수중 암초는 관할 수역을 갖지 못하고, 간조 노출지는 육지나 섬의 12해리 영해 범위 이내에 있을 때에만 영해의 기점이 된다. 암석은 영해만 가질 수 있고, 섬만이 영해, EEZ, 대륙붕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국제해양법#이창위 교수#중국#남중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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