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쿠데타 막은 SNS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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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새벽 남산의 중앙방송국. 숙직실에서 자던 26세 박종세 아나운서는 혼비백산 깨어났다. 헌병들이 들이닥치더니 곧 공수부대 장병들이 방송국을 장악했다. 박정희 장군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우리 군이 일어섰소. 5시 정각에 방송해줘야겠소.” 새벽 5시 시보(時報)와 함께 박종세가 혁명공약을 낭독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방송국을 장악해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것이 쿠데타 성공의 관건이었다. ‘6시간 천하’로 끝난 터키 쿠데타를 보면 그것도 20세기에나 먹혔지 이제 약효가 떨어진 것 같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이 TV 방송까지 내보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순식간에 상황을 뒤집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평소 ‘불순한 선전도구’라며 탄압했던 SNS의 위력을 십분 활용해 휴가지에서 자신의 건재를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시민들은 SNS로 소식을 공유하며 탱크를 막아섰다. SNS가 쿠데타의 문법을 바꾼 것이다.

▷쿠데타 세력은 오프라인 시설 점령에만 신경 쓰다 SNS 민심의 결집 속도에 허를 찔렸다. ‘쿠데타 진압의 1등 공신은 SNS’란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14년째 장기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권과 언론 탄압, 부정부패 의혹에 휘말리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로 국내외에서 비판받고 있다. 뭔가 잘못되면 남 탓, 외국 탓으로 돌려온 그가 실패한 쿠데타를 빌미로 ‘반대파 숙청’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높다.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쿠데타의 첫째 원칙이 정부 수반 제압, 둘째 원칙은 내 편 아닌 모바일 세력의 손발 묶어놓기다. 이를 무시한 쿠데타 세력의 어설픈 거사 탓에 애먼 국민들만 후폭풍에 시달리게 생겼다. 그럼에도 SNS 민심은 왜 다섯 번째 쿠데타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 답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시민의 말에 담겨 있다.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상의 쿠데타보다 낫다.”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에 대하여 경배(敬拜)를.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터키 쿠데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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