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국민이 군부 쿠데타 배후를 놓고 견해가 팽팽하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불신하는 극단 사회로 치닫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편에 선 친(親)정부파는 야외 광장으로 몰려나와 공개적으로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면 반(反)정부파는 몸을 숨긴 채 소셜미디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데타 조작론을 집중 제기했다.
터키 정부는 주지사 30명과 경찰 등 약 9000명을 해임하고 쿠데타 주도자로 의심되는 장성 27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국영 언론이 전했다. 유럽은 터키 정부가 쿠데타에 가담하거나 동조한 6000여 명에 대한 ‘피의 숙청’을 예고한 데 대해 보복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15일(현지 시간) 쿠데타 이후 4일 내내 도심 곳곳으로 쏟아져 나와 대규모 ‘오프라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는 17일 오후 8시부터 터키 국기를 든 군중이 모이면서 시작된 대통령 지지 시위가 18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쿠데타 이후 이스탄불 내 모든 지하철과 트램 등 대중교통 요금을 무료화하며 군중 집결을 유도하고 있다.
▼ 터키 정부, 공무원 9000명 해임… 유럽 “보복 자제를” ▼
초대형 터키 국기 두 개가 공중에 휘날리는 탁심 광장에는 자정 넘어서까지 수천 명이 국기를 흔들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칭송하는 노래를 연이어 불렀다.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를 강화하는 대통령 편에 선 시위대는 이슬람 색채도 물씬 풍겼다. 광장에 세워진 대형버스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테크비르!”(‘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터키어)라고 외치면 군중이 “알라후 아크바르!”(같은 의미의 아랍어)로 화답했다. 터키 인구의 99%는 무슬림이지만 이슬람이 국교는 아니다.
이들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반대쪽 국민을 ‘대통령이 쿠데타 주범으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 동조자’로 몰아가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17일 쿠데타로 사망한 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며 귈렌을 비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군중은 잔뜩 흥분해 “귈렌을 당장 데려와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17일 오후부터 이스탄불 주요 중심지인 술탄아흐메트 광장, 이스티크랄 거리, 훨하나 공원 등을 돌아다녔지만 표면적으론 반정부 시위를 볼 수 없었다. 이스탄불은 반정부 야외 시위를 벌였다간 집결지마다 모인 수천 명 단위의 친정부 군중에게 ‘맞아죽을’ 분위기가 팽배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대하는 반정부파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쿠데타의 진실을 놓고 ‘온라인 설전’을 벌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쿠데타 군부가 전투기와 헬기로 공중까지 장악했다는데 대통령은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왔는지’ ‘쿠데타 군부가 아타튀르크 공항을 장악했다는데 대통령이 상륙한 직후 왜 바로 다 사라졌는지’ 등 납득하기 어려운 점에 의문을 잇달아 제기했다. 쿠데타를 단행한 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군지조차 모르겠다는 주장도 많았다. 통상 쿠데타는 사령관이 직접 방송에 나와 입장표명문을 읽는데 이번엔 아무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방송국 여자 아나운서에게 읽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반정부파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종교적 몰입도가 강하고 수적으로 다수인 하층민의 표심을 노려 정치에 종교를 개입시키고, 쿠데타를 계기로 시위 현장에 이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본다.
터키 민심이 양쪽으로 극명히 갈리면서 불신의 벽은 높아만 가고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터키에서 종종 벌이는 테러도 정부가 조작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자기와 견해가 다른 반대파의 모든 것을 배척하는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탁심 광장에서 만난 오스만 씨(24)는 “몇 달 전 IS가 이곳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했을 때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보고 펑펑 울었다. 마침 우는 내 모습이 TV에 방송됐는데 사람들이 나를 ‘정부가 심어둔 연기자’라고 몰아갔다”며 씁쓸해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대표는 18일 오전 28개 EU 회원국 외교장관 및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조찬회동을 한 후 기자회견에서 “사형제를 재도입한 국가는 EU에 가입할 수 없다”며 에르도안 정권의 사형제 부활 움직임을 경계했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교장관은 터키의 숙청을 우려하며 보복 자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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