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당 전당대회/오하이오 전당대회 첫날/이승헌 특파원 현장 르포]
“차기 퍼스트레이디 소개하겠다” 연단 선 트럼프, 아내에게 키스 세례
멜라니아 15분연설 “홈런” 평가에도 미셸의 8년전 원고 표절 의혹
반대파 자유투표 요구로 ‘아수라장’
18일 오후 10시 20분(현지 시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 연단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푸른빛이 도는 은색 장막이 드리워졌다. 이내 정장 차림의 거한(巨漢)이 실루엣(그림자를 통해 보이는 윤곽)만을 드리운 채 뚜벅뚜벅 등장했다.
새 둥지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그가 이번 전대의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70)임을 알 수 있었다. 전대 마지막 날인 21일 등장하기로 돼 있던 주인공의 깜짝 등장에 대회장을 가득 채운 5만여 명의 대의원은 일제히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쳤다. 장내에선 경선 기간 사용하던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연단에 선 트럼프는 첫날 메인 연사이자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46)를 “차기 퍼스트레이디”라고 소개한 뒤 아내의 볼에 연신 키스를 했다. 슬로베니아 슈퍼모델 출신인 그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존 퀸시 애덤스 6대 대통령(1825∼1829년 재임)의 영국 태생 부인 루이자 애덤스 이후 188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하는 외국 태생의 미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멜라니아는 다소 흥분한 듯했다. 참모들과 5주 넘게 원고를 고치고 수차례 연습까지 했지만 영어 발음과 억양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은) 필요할 때는 (상대방에게) 날카롭다. 하지만 동시에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 사람들은 도널드의 친절함을 항상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곧 대부분이 알게 될 것”이라며 남편을 변호했다. 또 “(외국인과 결혼한) 도널드는 대통령이 되면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은 물론이고 히스패닉 흑인 등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인종과 종교적 편견을 변호한 발언이었다. CNN은 “록스타처럼 등장한 트럼프가 첫날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아내에게 부여한 순간”이라며 “멜라니아가 트럼프 감독의 지시에 따라 홈런을 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연설이 끝나자마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한 연설을 베꼈다는 의혹에 휘말리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멜라니아가 15분가량 이어진 연설 초반에 자신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다 “(부모님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열심히 일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를 명심시켰다.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한 대목은 단어와 배열이 8년 전 그대로였다.
이어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의 한계는 자신이 가진 꿈의 힘과 그것을 위해 일하려는 적극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전해줘야 한다”고 한 대목도 몇 글자를 제외하곤 똑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 스피치 라이터 존 패브로는 “멜라니아의 표절”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CNN은 멜라니아와 미셸의 발언 영상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표절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들어 본 적이 있지 않느냐? 단어 하나까지 같다”고 지적했다.
연설 시작 전 대회 초반은 반(反)트럼프 세력과 트럼프 지지자 간의 설전으로 혼란스러웠다. ‘구속 대의원’의 자유투표제를 주장하는 반대 진영은 대의원의 현장점호 투표를 뜻하는 ‘롤콜(roll call)’을 외치며 표결을 요구했고, 트럼프 지지자는 ‘USA’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하지만 반대파의 시도는 표결에 부치기 위해 필요한 최소 7개 주의 지지를 얻지 못해 ‘트럼프 대관식’을 막지는 못했다.
공화당이 이날 발표한 정강정책에는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을 포함해 불법 이민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동성 결혼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등 한층 보수적인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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