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중국 경제, 특히 국유기업에 대한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내년 하반기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최고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권력서열 1, 2위인 두 사람의 갈등은 쉽게 봉합하기 어려워 중국 정치 경제의 불확실성을 고조할 수 있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유지돼 온 집단지도체제가 시 주석 3년을 맞으면서 유명무실화돼 시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2, 3년 동안 시 주석에게 순종해 온 리 총리가 반발하고 있다며 사례들을 열거했다.
두 사람은 4일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개최한 ‘전국 국유기업 개혁 좌담회’에서 국유기업에 대한 전혀 다른 처방을 제시하며 대립했다. 시 주석은 국가와 정치 위주의 접근법을, 리 총리는 시장지향적 대안을 들고나왔다.
시 주석은 “국유기업은 더욱 강하고, 우량하며, 커져야 한다”며 국유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지도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리 총리는 과잉 생산으로 비대해지거나 차입금의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청산 등 국유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규율을 따라야 한다며 시장주의적 접근을 내세웠다.
앞서 5월 9일 런민(人民)일보는 한 개면 이상 분량으로 ‘권위 있는 인사’의 인터뷰를 싣고 “일부 낙관론자들은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을 U자형 혹은 V자형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L자형 단계에 들어섰다”며 리 총리 측을 겨냥했다. 각종 규제를 풀고 올해 1∼3월에만 4조6000억 위안(약 828조 원)을 풀어 경기를 살리자는 리 총리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리 총리는 전국 관련 공무원 화상회의에서 ‘젠정팡취안(簡政放權·규제 간소화와 권력 이양)’을 언급하고 ‘샹런웨이궈(相忍爲國·국가가 고난을 당했을 때 고통을 함께함)’ 네 자를 거론하며 맞섰다.
시-리 갈등의 뿌리는 출신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시 주석은 태자당(중국 혁명 주도 세력의 자제들), 리 총리는 공청단(공산당 청년조직) 출신이다. 시 주석이 2012년 11월 최고 권력자가 될 때까지 자신의 라이벌이던 리 총리와 공청단을 견제하는 데서 나아가 본때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내년 19차 전당대회에서 리 총리가 연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리 총리가 나이 상한(68세)에는 걸리지 않아 상무위원으로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총리직에서는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가 신임 총리로 거론된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밍징신원왕(明鏡新聞網)은 최근 출간된 책 ‘중공(中共) 19대 상무위원’을 인용해 시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과 시 주석의 수석 책사 왕후닝(王호寧)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신임 상무위원으로 승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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