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선거 압승으로 첫 여성 도쿄(東京)도지사에 오르게 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당선자는 유세 과정에서 “어떤 조직도,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선 뒤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행정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정당 지원을 받고 출마한 경쟁자들은 조직 이해관계에 얽매여 소신껏 일하기 어렵지만 자신은 자유롭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고이케 당선자는 선거에 출마하면서 소속 정당인 자민당의 지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민당 도쿄지부에 대해 의사결정 구조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라고 비판했다. 또 자신이 당선되면 복마전 같은 도쿄도의회를 해산하겠다고 공약했다. 기성 정당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지만 구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는 ‘쇄신’과 ‘개혁’의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기존 정당에 ‘노(NO)’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대신 긁어준 것이다.
투표함을 열어 보니 ‘고이케 바람’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역대 최다인 21명의 후보가 난립한 이번 선거에서 44.5%의 지지를 받았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존 자민당 지지자의 55%, 민진당 지지자의 32%, 무당파층의 49%가 고이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투표율은 59.73%로 직전 2014년 2월 선거 때보다 13.59%포인트나 높았다.
아사히신문은 1일 이를 ‘고이케 극장(劇場)의 완승’이라고 표현했다. 정책 논쟁으로는 차이가 드러나기 어려운 선거 상황에서 정교한 이미지 전략으로 무당파층을 끌어들이고 자신이 탈당한 자민당 지지자들까지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민당은 자신들이 추천한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후보를 위해 당력을 총집중했지만 유권자들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탈당한) 고이케를 지원하면 제명 조치하겠다”는 통지를 내려 보내는 옹졸한 태도를 보여 오히려 빈축을 샀다. 덕분에 고이케 당선자는 아무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고 선거전은 ‘조직’ 대 ‘개인’의 싸움으로 형성됐다.
도쿄도는 직원만 16만 명에 이르며 연 13조3000억 엔(약 143조760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른다. 웬만한 국가보다도 덩치가 크다. 도쿄신문은 “남성 중심의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고이케 당선자가 도쿄도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당선 즉시 도의회 해산’을 공약했던 고이케 당선자는 하지만 당선 직후엔 바로 말을 바꿨다. 그는 “도쿄도의회와 연대해 도정을 혁신해 나가겠다”고 말해 의회와 협력할 뜻을 내비쳤다. 고이케 당선자는 2일 취임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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