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끌어들이는 트럼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일 03시 00분


트럼프, e메일 해킹 요청-크림병합 두둔 발언 등 러브콜
힐러리 對러정책 실패-신냉전 종식 적임자 강조 전략
러도 내심 당선기대… 美일각 “푸틴이 뒤통수 칠수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70)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4)을 미 대선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e메일 해킹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된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힐러리의 e메일도 해킹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등 친(親)러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대(對)러 경제제재를 불러온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크림 반도 강제 병합에 대해서도 이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사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러시아 문제가 미 대선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트럼프의 러시아 관련 발언은 실수라기보다는 선거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 시절 실패했던 대러 정책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내가 러시아를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7월 27일 사설에서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철저히 실패했다”며 “반면 나토 동맹국이 공격받더라도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발언은 유럽으로 팽창을 꿈꾸는 러시아에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도 내심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고 있다. 국무장관을 지내 러시아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강성의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상대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반면 ‘장사꾼’인 트럼프는 협상과 거래를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상대로 평가된다. 워싱턴포스트도 최근 기사에서 “크렘린 궁의 생각은 단순하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더 부합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트럼프는 러시아 사업을 위해 오래전부터 푸틴 대통령에게 구애를 펼쳐 왔다. 그동안은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된 뒤로는 당당히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1987년부터 러시아에 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또 1990년대와 2013년에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 직전 취소당했다.

잇따른 푸대접에도 트럼프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더 이상 멋질 수 없는 사람”이라며 끊임없이 러브 콜을 날렸다. 가디언은 “트럼프는 푸틴의 팬이자, 푸틴을 롤 모델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올 5월 친푸틴계인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정책고문으로 일했던 폴 매너포트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앉히는 등 러시아 채널을 강화했다.

민주당은 러시아로 기우는 트럼프를 연일 맹공하고 있지만 보다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코언 프린스턴대 교수는 7월 30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의 정보원이라는 비아냥 등은 대부분 민주당 선거캠프에서 나온 것들”이라며 “어떤 후보가 러시아와 다양하게 협력하면서 신냉전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일면식은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는 트럼프가 상황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는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트럼프는 본인의 탁월한 협상력으로 푸틴 대통령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은 ‘셈이 복잡하지 않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며 자신을 칭찬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도 버젓이 조지아를 침공했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겠다’고 다짐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뒤통수를 쳤다”고 지적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푸틴#트럼프#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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