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잔수(栗戰書)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이 6월 7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링지화(令計劃) 전 중앙판공청 주임의 조사에 대한 내부 저항을 강하게 비판한 지난달 1일 연설문을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인터넷판이 13일 뒤늦게 공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리 주임의 연설을 나중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내년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막후에서 치열하게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 주임은 지난달 1일 중국 공산당 창건 95주년을 하루 앞두고 중앙판공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표창수여식 연설에서 “중앙판공청 간부 상당수가 링지화 조사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링지화 사건 조사과정에서 관련 정황을 은폐, 기만하거나 조직에 저항한 간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결코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시 주석을 보좌하는 비서실 내부에서 이런 분열 및 내부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현직 책임자가 공개하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공산당 기관지가 정치국 상무위원도 아닌 중앙판공청 주임 연설을 자세히 공개한 것도 드문 사례다. 리 주임이 내년 19차 당대회에서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고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감독위원회 서기 후임으로 임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리 주임은 “링지화의 중앙판공청 재임 기간에 상당수가 그의 환심을 사거나 그의 약점을 이용했으며 아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링지화는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7년을 중앙판공청에 재직했다. 판공청 주임은 최고 지도자들의 기밀 건강 문건작성 연락 등 비서 업무를 맡는다. 링지화는 2012년 3월 아들 링구(令谷)가 베이징 시내에서 페라리를 몰고 달리다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차에는 2명의 여성이 타고 있었으며 한 명이 숨졌다. 링지화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다 역풍을 맞았다.
리 주임은 “당시 링지화의 권력이 두려워 그의 밑에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링지화의 거짓말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면 최소한 침묵을 지키든지 링지화의 잘못을 막거나 들춰낼 용기가 없었다면 최소한 공범이라도 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직원들을 비판했다.
링지화가 낙마한 후 3년간 중앙판공청에서 최소 8명의 간부가 링지화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했다. 훠커 중앙판공청 비서국 국장이 수뢰 혐의와 함께 링지화에게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낙마했다. 중앙판공청 조정연구실 부주임과 중앙보밀국장을 지냈던 샤융(夏勇) 국무원 법제판공실 부주임도 최근 링지화 연계설로 감찰 조사를 받기 시작하자 물러났다.
리 주임의 링지화 지지 세력에 대한 비판은 “전임 권력자에게 여전히 충성을 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 링지화 전 중앙판공청 주임 겸 통일전선부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계열이다. 시 주석이 잇따라 공청단 개혁에 나서고 있지만 곳곳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중앙판공청 내부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리 주임의 연설을 공개한 것은 내년 말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여론전 성격도 띠고 있다. 중앙판공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리 주임은 연설에서 “운전기사 요리사 경호원 비서들로 구성된 중앙판공청 직원들이 당과 시 주석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시 주석의 남자’로 알려진 자신의 충성심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시진핑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 핵심을 결연히 수호하면서 ‘시진핑 총서기라는 핵심’을 옹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이라는 용어는 그동안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3명의 지도자만 받았던 칭호다.
리 주임은 시 주석이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해 점심 시간에 쉬지도 못한 채 오후 9~10시경 중난하이(中南海)의 숙소로 퇴근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 주석에게는 퇴근 후에도 숙소에서 서류를 읽어보고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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