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던 선제적 핵 공격 포기 정책이 보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 달 유엔 총회 연설에서 선제 핵 공격 포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동맹국과 주요 각료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려는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돌출 행동을 즐기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핵무기 통제권을 쥐여 줘도 되느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불안한 대통령’의 당선에 대비해 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이 일제히 오바마 대통령의 선제 핵 공격 포기 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제공격 카드를 포기하면 미국의 핵 억지력이 약화돼 일부 국가가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였다. WSJ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도 선제 핵 공격 포기 안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중한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후보가 핵무기 선제 공격 가능성을 내비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미 MSNBC는 3일 “트럼프가 수개월 전 유명 외교정책 전문가에게 ‘핵무기가 있는데 왜 쓸 수 없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봤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일자 트럼프는 6일 뉴햄프셔 주 윈덤 유세에서 “나는 핵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핵무기 불안이 커지자 냉전시대부터 이어진 낙후된 핵무기 발사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부 시스템이 1970년대 만들어진 IBM컴퓨터와 8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가동돼 “펜타곤이 박물관이냐”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냉전시대 구축된 핵무기 발사 시스템이 신중함보다는 신속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문제다. 현 시스템은 러시아가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후 30분 안에 맞대응해 빨리 쏘아 올리는 것에만 무게를 두고 있다. 이마저도 기술적 준비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대통령이 적의 발사 보고를 받은 뒤 대응 발사를 결정하는 데 허용된 시간은 고작 4분에 불과하다고 포린폴리시가 보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한 인사는 “발사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과정은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 견제할 방안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은 언제 어디로든 핵 발사를 지시할 수 있는 ‘핵 가방’을 갖고 다니는데 여기엔 국방부에 발사를 지시할 수 있는 보안전화와 대통령 본인임을 인증할 수 있는 보안코드 등이 들어 있다. 영화와 달리 대통령이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국방부에 전화해 발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브루스 블레어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과정에서 국방장관은 아무 권한이 없다. 대통령의 지시를 불복종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 925개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만7000배 위력으로 모든 도시와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며 “(트럼프 때문에) 대통령의 발사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느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현재는 그런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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