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에 거대 쇼핑몰까지…한쪽선 “9·11 정신 잊혀질라” 걱정
추모 상징 ‘생존자 나무’ 푯말 없이 외로이 그 자리에
“생명의 나무(tree of life)인가, 생존의 나무(tree of survival)인가 하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어요. 어디 있죠?”(관광객)
“아, 생존자 나무(survivor tree)요?”(국립9·11메모리얼박물관 직원)
일요일인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남쪽 ‘그라운드 제로’의 간이안내소 옆에 30분 정도 서 있다가 이런 질문과 답변을 서너 차례 들었다. 2001년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테러 공격을 받고 약 3000명이 사망한 비극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람들은 ‘생존자’(나무)를 만나고 싶어 했다.
50, 60대로 보이는 백인 중년 관광객 무리를 따라 생존자 나무 앞으로 갔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 조성된 두 개의 대형 인공폭포(9·11메모리얼) 사이에 있었다. 높이 1m, 지름 2m 정도의 하얀색 보호 펜스가 세워져 있을 뿐 아무런 푯말이 없었다.
박물관 직원 지노 웨어 씨가 태블릿PC를 들고 나무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나무의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며 테러의 폐허 속에서 발견된 약 2.40m의 부러진 배나무가 9년여의 극진한 치료 과정을 거쳐 2010년 12월 이 자리로 돌아와 높이 10m의 건강한 나무로 우뚝 서게 된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웨어 씨는 “이 나무는 9·11 비극의 산증인이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9·11 정신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메모리얼(인공폭포)을 둘러싼 4각 동판에 적힌 희생자들의 이름, 그리고 그 이름 옆에 꽂혀 있는 작은 성조기와 빨간 장미들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저절로 숙연하게 한다. 군 제대 후 복학 전에 뉴욕 여행을 왔다는 한국인 박모 씨(24·대학생)는 “한국 사회는 어떤 비극이나 사고를 발전적으로, 미래 지향적으로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미국보다 많이 모자란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2001년 테러 이후 15년이 지나면서 그라운드 제로는 비극과 추모의 현장에서 도약과 부흥의 발판으로 변모하고 있다. 2014년 미국 내 최고층(높이 541m)인 원월드트레이드센터(1WTC·일명 ‘프리덤 타워’)가 완공된 데 이어 최근 뉴욕, 뉴저지의 대중교통 중심이자 대형 쇼핑몰인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역이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햐얀 새의 큰 날개를 형상화한 WTC역 디자인은 재건과 부활의 9·11 정신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건물 거리가 107m에 이르는 WTC역은 인근 대형 몰 ‘센트리21’ 등과 함께 맨해튼 남부의 쇼핑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WTC역 내 화장품 가게의 얼리사 앨타베프 매니저는 “WTC역은 뉴저지 주민들이 도시철도를 이용해 맨해튼으로 들어온 뒤 지하철로 갈아타는 교통 허브”라며 “대박을 기대하고 상점 입주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쇼핑몰의 등장이 9·11메모리얼의 역사적 의미를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쇼핑몰 내에서 안내 역할을 담당한 한 9·11메모리얼박물관 직원은 “쇼핑몰은 지하 통로를 통해 원월드트레이드센터 전망대와 곧바로 연결된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모보다) 쇼핑과 관광만 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은 토박이 뉴요커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70)와 뉴욕 상원의원 출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의 맞대결이어서 ‘뉴욕 대전’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뉴욕의 상징이자 대(對)테러 정책의 시금석인 9·11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양 캠프는 일단 9·11테러 15주년인 11일엔 상호 비방 TV광고 등을 중단하고 온 국민과 함께 추모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그러나 향후 TV토론 등에서 누가 진정한 9·11 정신의 계승자이고, 테러 문제 해결의 최적임자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15년이 됐지만 9·11의 위력이 뉴요커와 미국인들에게, 그리고 미국 정치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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