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시욱]세비 결정권 스스로 포기한 영국의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9일 03시 00분


英, 여야 전현직 389명 연루
의원 보조금 부정사건 계기로 가중된 의회 불신에 결정권 포기
20대 국회의 개혁 첫걸음… 보수 결정 방식 개선에서부터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가 제시한 보수산정위 試案 주목되나
독립기구 설립 여부가 관건

남시욱 객원논설위원 세종대 석좌교수
남시욱 객원논설위원 세종대 석좌교수
난마와 같이 엉클어진 국정을 획기적으로 쇄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개혁하고 개혁된 국회가 국정 쇄신의 주체가 되게 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왔다. 국회개혁범국민연합이라는 범국민 단체는 작년 10월부터 추진한 국회 개혁 청원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지난주 마무리하고 헌법 청원 국민대회를 가졌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국회 개혁을 위한 5개 당면 과제로 국회의원 세비 결정 방식 개혁,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및 보좌진 상납 관행 근절, 국민소환제 도입, 탈법 국회를 준법 국회로 만들기, 비윤리적 폭로 범죄의 면책특권 폐지를 선정했다.

이 같은 국민 여론에 호응하듯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달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 70주년 총정리 국민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개혁을 단행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국회를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내용이다. 국회 개혁을 위해서는 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와 함께 국회의원 보수 결정 방식의 개혁이 우선 돼야 한다. 20대 국회에 들어와 발족한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는 이번에 외부인사들로 구성되는 국회의원 보수산정위원회(가칭) 설치 시안을 마련했다. 괄목할 방안이지만, 국회의원 보수 제도의 완전한 개혁을 하려면 이 기구가 국회에 소속돼서는 안 된다. 영국처럼 국회로부터 독립된 기구여야 한다.

영국 의회가 의원들의 보수 산정권을 자진 포기키로 한 것은 7년 전이다. 이 나라의 정치판을 송두리째 뒤흔든 전대미문의 의원 보조금 부정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가 “지난 2세기 이래 영국 의회 최대의 부정 사건”이라고 자인한 이 사건은 2009년에 발생했다. 그해 5월부터 41일간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연속 폭로한 상하 양원 의원들의 각종 활동비 유용 및 부정 청구액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부정에 관련되어 이를 자인하고 그 돈을 반납한 ‘탐욕스러운’ 의원(데일리메일)은 당시의 노동당 정권 각료들과 야당인 보수당 간부들, 그리고 전직 의원을 비롯해 모두 389명이고, 그 액수는 60만 파운드(약 9억1440만 원)대에 이른다. 어떤 보수당 의원은 활동비를 유용해 아들 2명을 순차적으로 고용하고 보수를 지불했다. 보수당의 여성 의원은 유모를 고용하는 데 의원 활동비를 유용해 이른바 유모 게이트 사건을 일으켰다. 한 의원은 주택수당으로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다 집을 장만했고, 어떤 의원은 런던 시내 자기 집 정원에다 오리집을 지었다. 이때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은 하원의장을 비롯해 46명이었고 형사소추를 받은 의원도 8명이었다.

이 사태로 인해 영국 국민의 의회 불신이 극에 달하자 당시 야당이던 보수당은 언론의 폭로전이 최고조에 달한 2009년 5월 20일, 수백 년 전통을 과감하게 버리고 독립된 의원 보수 결정 전담 기구를 만들어 의원들의 보수를 책정케 하자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독일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는 의원 보수 결정권을 의회의 고유 권한으로 정했고 미국 일본은 의원 보수를 물가상승률 또는 행정부 공무원 보수의 인상률과 연동시키는 방안을 택하고 있지만 영국 의회는 스스로 혁명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국의 의원 보수 결정을 전담하는 새 독립기구(IPSA·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독립의회기준처)는 당시 뉴질랜드의 모든 국가 고위직의 보수를 책정하던 독립기구를 모델로 한 것이다. 다만 IPSA는 의원 보수만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뉴질랜드의 경우와 다르다. IPSA는 의원들의 보수 책정과 인상 문제를 전담하고 의원 개인별 출납명세를 정기적으로 공표한다. IPSA 설치 법안은 1개월 만에 하원에서 통과됐다.

2010년 발족한 영국의 IPSA는 여왕이 임명하는 위원장 1명과 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임기는 모두 5년이며 3년간 연임할 수 있다. 4명의 위원 중에는 사법계 고위직 경험자, 감사관 경험자, 전직 의원을 1명씩 넣도록 했다. 올 6월 새 위원장에 취임한 루스 에번스는 35년간의 사회운동 경력을 가진 여성 활동가다. 요즘에는 인도에서도 국회의원 보수 결정권을 영국처럼 독립기구가 전담하게 하자는 주장과 싱가포르처럼 총리실로 이관하자는 주장이 대립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남시욱 객원논설위원 세종대 석좌교수
#국회#영국의회#세비 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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