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대통령의 건강 이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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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26세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프로작 같은 우울증 약도 없던 시절, 그는 자신을 ‘살아있는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우울증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과 흑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워줘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정상적 시기에는 비정상적 지도자가 오히려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 낸다는 ‘제정신의 반대 법칙’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가장 극단적인 반대의 경우다. 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는 암페타민을 매일 정맥에 주사해 정신병자에 가까워지면서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대통령의 건강 이상이 국가에 항상 불행인 것도 아니고, 또 항상 행운인 것만도 아닌 셈이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리기 전까지 ‘경솔하다고 할 순 없지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따뜻하고 겸손해졌고 위기에 적합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69)이 11일 9·11테러 추모행사 후 사실상 졸도하는 일이 벌어져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12일 CNN 인터뷰에서 “폐렴 진단을 받았는데 쉬면 나을 것”이라고 한 변명은 되레 역풍을 불러왔다. 폐렴보다 비밀주의가 더 문제라는 거다. 클린턴은 국무장관이던 2012년 뇌진탕으로 한 달 쉬었을 때도 회복에 6개월이나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힐러리의 건강이 대통령직 수행에 도움이 될지, 그 반대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비밀주의가 화를 키우는 것은 분명하다. 장관 때 정부 메일을 안 쓰고 개인 이메일만 사용한 ‘이메일 게이트’에 대한 해명도 명쾌하지 않다. 빌 클린턴 정부 때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제임스 울시는 “클린턴은 (기밀) 임무와 안보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CIA를 이끌 능력이 전혀 없다”며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와의 격차는 2%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결정적 승부처가 될 첫 TV토론(26일)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미국 대선#힐러리 클린턴#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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