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첫 TV토론 후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힐러리 승리’라고 보도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가 이겼다”는 정반대 조사 결과를 내놓은 언론도 많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55 대 45로 트럼프가 앞섰고, CNBC방송에서는 67 대 33까지 벌어졌다. 워싱턴타임스는 “유력 매체인 두 조사에는 100여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며 “두 조사 결과를 합치면 압도적으로 트럼프 승리”라고 했다. 심지어 abc방송은 트럼프가 54%로 1위, 힐러리는 10%로 4위였다.
국내 언론들이 힐러리 승리의 근거로 주로 인용한 CNN,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가 친(親)힐러리, 반(反)트럼프 매체라는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NYT는 공식적으로 힐러리를 지지했고, WP는 별도 팀까지 구성해 트럼프의 언행 불일치와 자질 부족 문제를 부각시키며 트럼프와 전쟁 중이다. 62 대 27로 힐러리 압승을 보도한 CNN 조사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28일 “조사 대상이 521명으로 너무 적은 데다 41%가 민주당 지지, 26%가 공화당 지지라고 밝혀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기사 밑에는 CNN을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Clinton News Network)’라고 비꼬는 댓글이 달렸다.
50 대 33으로 트럼프 승리를 전한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온라인 조사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토론 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열광적으로 지지를 굳혔다는 걸 보여주었다”며 “힐러리가 준비를 철저히 했고 팩트 정리 훈련이 잘돼 말을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의 준비되지 않은 거친 말과 행동이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 오히려 좋았다고 한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미 언론에 나타난 친트럼프 여론을 종합해보면 미국 중산층은 남의 돈(세금과 기부)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오면서 비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힐러리보다 직접 번 돈으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낙관주의적인 트럼프가 무너진 미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TV토론을 통해 그가 미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어서 대통령 직을 수행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바꿨다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주로 고학력인 기존 전통 매체 기자들이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지적은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와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때부터 있었다. 주류 언론들은 처음엔 그를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히피 사회주의자’라고 무시했다가 나중에서야 ‘양극화를 해결하라는 샌더스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다’며 공개적인 반성 기사들을 쏟아놓기도 했다.
선입관을 강하게 믿어 통계 수치조차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것을 ‘확신 편견’이라고 한다. 미 대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이게 있는 건 아닐까. 1996년 빌 클린턴 2기 집권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를 돕고 있는 선거 전략가 딕 모리스는 최근 한국 월간지(월간중앙)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신문, 방송 기사를 보다 보면 힐러리가 이미 대선에서 압승한 것처럼 느껴진다. 트럼프 관련 보도는 ‘인종차별주의자’ ‘정신이상자’ 같은 가십성 보도만 넘치지 ‘트럼프 현상’에 대한 분석 기사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 정치를 자신들의 정치적 시각으로 보는 착시가 있다”고 했다.
미국 선거 결과는 한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희망이나 기대, 선입관을 걷어내고 종합적이고 냉정한 이성의 눈이 필요하다. 미 대선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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