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미국이 아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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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국내에도 생중계된 미국 대선 2차 토론회를 보면서 새삼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방을 향한 비방과 매도는 저주에 가까웠다. 정책 경쟁 같은 것은 없었다. 민주 공화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입에 주로 오르내린 단어들은 성추문, 거짓말, 인종차별, 정경유착, 탈세, 국가기밀 유출이었다.

 아직도 세계에는 미국이야말로 세계민주주의의 수호국이며 자유 민주 정의의 살아있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토론회가 아이들이 볼까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장이 된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민주 공화 모두 한통속


 트럼프는 역시 예의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힐러리는 조리 있는 말솜씨로 풍부한 국정 경험을 한 준비된 후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문제는 상위 1%의 ‘가진 자들’ 속에서 살아온 힐러리가 시종일관 ‘약자와 서민 편’으로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거였다. 기자에게 메일을 보낸 한 재미학자는 “3만 건이 넘는 이메일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월가와 정보통신 재벌을 통한 엄청난 기부금 모집을 한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하는 말이 덜 위선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힐러리가 철저히 제도권적 후보라면 트럼프는 비제도권 후보다. 제도권 대 비제도권, 인사이더 대 아웃사이더의 대결이 이번 미 대선의 특징이다. 주류 언론들이 주로 힐러리 편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론이 트럼프 편인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 SNS 여론을 훑다 보면 한국에 ‘헬조선’이 있다면 미국엔 ‘헬USA’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인 경북대 김광기 교수는 “미국이 망가진 지는 오래됐다. 버니 샌더스나 트럼프가 미국병을 겉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며 “보수 진보 프레임은 이미 깨졌다. 민주 공화 모두 대기업이나 월가의 슈퍼팩(Super PAC·정치기부금 상한선을 없앤 것)에 매수되어 돈에 움직이는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다”고 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가 ‘변화’였다면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분노’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깨졌고 중산층은 무너졌다. 수십 년간 국내외적으로 펴온 신자유주의 정책은 월가의 탐욕이 극에 달하며 있는 자,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 정책이 되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면서 일자리는 줄고 이라크 전쟁으로 재정도 파탄 났다.

 트럼프는 이 모든 책임을 히스패닉,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등 밖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비겁한 선동이다. 그가 ‘재앙’이라고까지 말하는 미국병은 남이 아닌 미국인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미국 지도자들의 자성과 반성이 먼저다.

미국병 어떻게 해결할까

 이번 미 대선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유례없이 높다. 힐러리와 트럼프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미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겠지만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라는 우리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이 어떤 해법을 내놓고 어떻게 해결해 갈지도 궁금하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선거에서 드러난 미국 시민의 절망과 불안 분노,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대한 바닥 여론을 깊이 차분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가 떨어지든 예상을 깨고 당선되든, 트럼프와 트럼프 현상을 다 같이 봐야 한다는 거다.

 미국이 아프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미국 대선#오바마#트럼프#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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