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기자의 필담]“딸이 공부해야 집안도 나라 경제도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마케팅디렉터 최혜정 본부장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마케팅 디렉터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도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이 높은 투자”라고 했다. 뒤쪽 왼쪽에 보이는 포스터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인 소녀가 시에라리온의 소녀 페라 무스다. 지금은 ‘스쿨미’ 캠페인 덕분에 학교에 다니며 변호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마케팅 디렉터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도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이 높은 투자”라고 했다. 뒤쪽 왼쪽에 보이는 포스터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인 소녀가 시에라리온의 소녀 페라 무스다. 지금은 ‘스쿨미’ 캠페인 덕분에 학교에 다니며 변호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진영 기자
이진영 기자
 아이를 업고 머리에 물동이를 인 흑인 소녀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어린 동생 돌보고 집안일 하느라 여자 애는 학교 갈 여유가 없었던 때가. 그래서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덕담으로만 들리지 않던 시절이.

 그런데 이 흑인 여아의 딱한 사정은 우리 경험치 밖이었다. 업은 아이가 동생이 아니라 자기 아이인 것이다. 아프리카 소녀들이 학교를 못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강제 조혼(早婚)으로 10대에 벌써 남편과 아이가 있다. 조혼이 아니어도 ‘여자가 배워서 뭐하나’라고 하는 가난한 부모가 많다. 용케 허락을 받아도 학교까지 가는 길이 안전하지 않다. 오랜 내전으로 갈 만한 학교가 없거나 학교가 있어도 교사가 없다….

 국제어린이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스쿨미(School me)’, 우리말로 ‘나도 학교가자’ 프로젝트는 학교 갈 엄두를 못 내는 아프리카 여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캠페인이다. 개발도상국 여아 교육은 요즘 국제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이 주도하는 ‘렛 걸스 런(Let Girls Learn)’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2013년 ‘스쿨미’ 캠페인을 시작해 이 분야를 선도해 온 이가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마케팅 디렉터(55)다.

아프리카 여아 학교보내기 프로젝트

 ―스쿨미 캠페인 대상이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우간다 4개국의 여자아이들이다. 선정 기준이 무엇인가.

 “가장 열악한 대상을 선택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초등 학령(學齡) 아동이 6100만 명이고 이 중 여아가 3200만 명(53%)이다. 학교에 못 가는 여아의 절반은 사하라 이남에 산다. 그곳 소녀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했더니 ‘당장 뭐가 하고 싶으냐고 물어주세요. 난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하더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돕고 있나.

라이베리아 소녀와 ‘School me’(나도 학교 가자) 표어를 들어 보이는 최혜정 본부장.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제공
라이베리아 소녀와 ‘School me’(나도 학교 가자) 표어를 들어 보이는 최혜정 본부장.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제공
 “학교를 짓고 교사를 양성한다. 10대에 엄마가 돼버린 걸 마더(girl mother)가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려고 보육 시설도 운영한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 짓는 것도 중요하다.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할 위험도 있고, 여자 화장실이 없으면 생리 기간에 학교에 안 온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면 수업을 못 따라가 자퇴한다. 유목민 마을의 경우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 학교 가는 길이 매우 위험하다. 맹수들이 공격하거나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 안에 기숙사를 짓는다. 돈이 없어 학교 못 보낸다고 하는 엄마들에겐 국수나 신발 장사를 하도록 종잣돈을 지원한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부모에게 딸을 학교에 보내라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겠다.

 “교육이 배고픈 아이 먹이는 일 다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워야 미래가 있는 거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 1953년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영국인 직원이 부산 피란민촌을 둘러보고 쓴 글이 있다. 엄마들이 국밥 장사를 하고 집에 갈 땐 쌀 한 봉지와 함께 책을 꼭 사들고 가더라는 내용이다. 피란민촌엔 어디에나 학교가 있었다. 그걸 보고 한국엔 희망이 있다, 여길 돕자고 설득했단다. 아프리카는 젊다. 15세 미만이 절반인 마을이 많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을 10년간 죽어라 교육하면 그 마을은 바뀌는 거다.”

 ―왜 남아가 아닌 여아들의 교육인가. 

 “여자아이들은 약자다. 전 세계 빈곤 인구의 70%가 여성이다. 여자를 교육해야 엄마가 된 후 아이를 위생적으로 키운다. 2011년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모든 여아가 중등교육을 받을 경우 이 지역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41%포인트 낮아진다. 엄마가 번 소득의 70, 80%는 집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이보다 훨씬 낮다. 여자의 배움은 가정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

 ―올해까지 3년 캠페인을 마무리했는데 성과는 어떤가.

 “3년간 90억 원을 들여 학생 5만 명(남자아이 포함), 학부모 2만5000명, 교사 1000명이 혜택을 봤다. 2019년까지 3년 연장해 2기 캠페인을 한다. 2기 목표는 중퇴율을 낮추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률이 90%인데 졸업률은 15%도 안 된다. 여학생들은 4학년이 지나면 중퇴율이 확 높아진다. 이때쯤 되면 덩치가 커져 집에서 일을 거들고, 양 30마리에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선 7초에 한 명씩 조혼을 하는데 이는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시에라리온의 경우 15세 미만 소녀 8명 중 1명이 임신 상태다. 학교에 다니면 조혼을 막는 효과도 있다.”

수저론 무색게 하는 아프리카 현실


 최 본부장은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카피라이터로 출발해 레보버넷코리아 등 여러 광고 회사에서 일했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칸광고제(은사자상)와 뉴욕광고페스티벌(금상)에서 수상했다.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8년 7월 이 단체에 합류해 22년간 광고업계에서 익힌 감각으로 ‘모자 뜨기’ 캠페인을 성공시켰다. 2007년 개도국 신생아들의 저체온증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모자 뜨기’는 올해로 10년이 됐다. 지금까지 모자로 살린 아이들이 290만 명이라고 한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땐 아프리카에 출장 갈 일이 없었겠다.

 “아프리카에서 깨지면서 깨치고 있다. 처음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여자아이들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질문을 해도 대답을 안 하는 아이가 많았다. 수줍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살면서 한 번도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그 후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한번은 ‘아침은 먹었니?’ ‘주말엔 뭐하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오후 3시에 한 끼 먹는 게 전부인 아이들에게, 일하느라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황당한 질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우간다의 어느 유목민 마을에서 아홉 살 꼬마를 봤다. 비쩍 마른 아이가 맨발에 물통을 지고 있어 받아서 내려주었는데 순간 물통이 너무 무거워 깜짝 놀랐다. 20kg이었다. 아버지는 아프고, 어머니는 돈 벌러 다른 나라로 갔고, 동생이 있고…. 난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물론 희망도 본다. 시에라리온의 열 살 소녀 페라 무스는 19kg의 몸으로 5kg의 물 봉지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판다. 어느 날 물 봉지를 인 채 교실을 기웃거리는 걸 보고 교복을 입혀 공부를 시켰다. 지금은 변호사가 되겠다며 열심이다. 우간다 어느 마을의 5학년 교실에서 유일한 여학생 린다를 봤다. 그 아이가 중학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은 조혼해 아이 업고 다니는데…. 무력감에 분노하다가도 린다 같은 아이를 보면 더 열심히 도와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국제 비정부기구(NGO)로서 힘든 점은….

 “지구가 연결돼 있어 나비 효과가 크다. 아침에 본 국제 뉴스가 오후쯤 내게 영향을 준다. 환율, 경제 동향, 자연 재해, 선거….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 에볼라가 확산돼 1년 정도 학교 문을 닫았다. 그런데 에볼라 사태가 끝난 뒤에도 여자아이들이 안 오는 거다. 학교에 안 오는 동안 여기저기서 성폭행 당해 임신을 한 거였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세계는 끝없이 변화하고, 이는 어려운 사람들에겐 더 심각한 영향을 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한 아이가 학교를 가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도 린다가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 하고 위로한다.”

“나도 구호물자 세대”


 ―광고 일과 NGO 일의 차이는….

 “광고대행사는 시작도 끝도 광고주다. 광고주가 갑이다. 여기에선 농사짓는 자영업자 같다. 씨도 내가 뿌리고 수확도 내가 한다. 갑을병 동체라고나 할까.”

 ―경쟁이 치열한 광고대행사보다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다.

 “여기도 경쟁이 있다. 우리가 못 미더우면 후원자들이 다른 단체로 간다. 보람은 있지만 일이 즐겁진 않다. 인디언들이 기우제 지내듯 일이 될 때까지 해야 한다. 다자 간 협력이 중요해 회의가 많고,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열정에 불 지르기라고나 할까. 이게 난롯불과 같아서 식으면 돈이나 사람이 있어도 일이 되지 않는다.”

 ―국내에도 불쌍한 아이들이 많은데 왜 해외 아이들을 도와야 하나.

 “밖에 나가면 우리가 (성공의) 증거라고 말한다. 한국은 전후 원조를 받고 일어나 수십 년 만에 원조하는 나라가 된 유일한 사례다. 아이티도 전후 2000달러(지금 시세로 약 700만∼800만 달러)를 한국에 원조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전후 한국 원조 활동에 쓴 돈이 현 시세로 환산하면 2000억 원 정도 된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란 이름하에 우리 돈으로 해외 원조 활동을 시작한 게 2005년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보내준 우유와 옷, 소독약을 받았다. 내가 그걸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우리는 아직 그 빚(해외 원조) 다 못 갚았다. 한국은 사랑에 빚진 나라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이브더칠드런#최혜정#스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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