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정의의 사도(使徒)’로 통했다. 법무부 부장관 재직 시절인 2004년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정책에 반대하면서 병상에 있던 법무부 장관 존 애슈크로프트를 대신해 조지 W 부시의 백악관 인사들을 막아서고 해당 정책 재인가 서명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랬던 코미가 부도덕한 공권력의 정치 개입을 상징하는 인물인 존 에드거 후버 전 FBI 국장과 비교당하는 처지가 됐다. 대선을 8일 앞둔 지난달 30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개인 e메일 스캔들 추가 수사를 발표하자 FBI가 비밀 정보를 이용해 정치 전반에 관여하던 과거를 답습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지타운대 외교연구원(ISD) 자문위원인 샌퍼드 엉거는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NYT)에 “후버는 사전경고 없이 예상 밖의 방법으로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곤 했다”며 코미와 후버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선임 윤리담당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는 지난달 30일 미 특별조사국과 정부윤리청에 코미가 ‘권력을 남용해’ 공직자의 선거 개입을 금지한 ‘해치법’을 위반했다며 FBI를 고소했다.
NYT는 FBI의 클린턴 e메일 추가 수사 발표가 관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FBI가 “대선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8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전 선대본부장 폴 매너포트의 러시아 유착 관계 의혹과 클린턴재단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FBI에 불어 닥친 역풍이 근래에 보기 드문 수준”이라는 내부인의 목소리도 전했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을 표적으로 삼은 후버와는 달리 코미는 두 후보를 모두 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코미는 7월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클린턴 불기소 결정을 내려 공화당과 트럼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새롭게 발견된 e메일의 존재를 숨길 경우 더 심각한 선거 개입 의혹을 샀을 거라는 반론도 나온다. NYT는 코미 측근의 말을 인용해 “추가로 발견된 e메일의 존재가 알려질 경우 의도적으로 해당 정보를 숨겼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코미가 이를 공개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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