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도 비선실세 파문… 대통령 절친이 국정 쥐락펴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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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재벌 ‘굽타 삼형제’, 장관-국영기업 인사 좌지우지… 국가사업 개입 5000억원 챙겨
주마 대통령 “꼭 도와주라” 지시도… 올해만 두번째 탄핵위기 몰릴 듯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비선 실세’의 횡포가 드러났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사진)과 절친한 인도계 재벌이 장관과 국영기업 인사를 좌우하며 사업상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남아공판 최순실 사건’이다.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에서는 2일 주마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날 남아공 법원은 툴리 마돈셀라 전 국민권익보호원장이 주마 대통령과 인도계 재벌인 ‘굽타 삼형제’의 유착과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쓴 355쪽 분량의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2일 공개된 보고서에는 비선 실세로 지목된 굽타 삼형제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락한 사례가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음세비시 요나스 남아공 재무차관은 “굽타 삼형제 중 한 명이 올해 초 ‘재무장관직을 수락하면 6억 랜드(약 506억 원)를 당신이 원하는 계좌에 꽂아주겠다’고 했다”며 “대신 장관이 되면 재무부 핵심 관료들을 물갈이하고 굽타 일가의 사업을 도와달라고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요나스 차관은 굽타 일가가 “가방을 가져오면 당장 현금으로 60만 랜드를 줄 수 있다”고 호언한 자리에 주마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아들은 굽타 일가가 경영하는 여러 회사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올해 초 여론에 밀려 사임했다. 요나스 차관은 이 만남에서 굽타 삼형제가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국가사업을 통해 60억 랜드에 가까운 재산을 모았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요나스 차관이 제안을 거부하자 무명에 가까운 데스 판로옌 하원의원이 재무장관이 됐지만 남아공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4일 만에 물러났다. 보고서에는 “판로옌 전 장관은 임명되기 전날을 포함해 총 7차례나 굽타 일가의 집을 찾아간 증거가 있다”고 나온다.

 주마 대통령이 템바 마세코 전 홍보수석에게 “굽타 형제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꼭 도와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보고서에 담겼다. 이에 따르면 굽타 형제는 마세코 전 수석을 만나 ‘우리 가족이 만드는 신문에 광고를 꽂아 달라’고 부탁했다. 굽타 형제들은 2013년 조카딸 결혼식 하객 200여 명을 실은 전용기를 대통령 전용 공군기지에 착륙시키고 하객들이 결혼식이 열린 리조트로 갈 때 경찰의 호위를 받았다.

 주마 대통령과 굽타 삼형제는 10년 전 형제가 운영하는 사하라 그룹의 연례행사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삼형제의 부모는 인도의 유명 컴퓨터회사인 사하라 그룹을 운영하는 재벌이다. 이들은 1993년 인도에서 남아공으로 건너와 항공 광산 에너지 미디어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주마 대통령의 부인과 딸, 아들은 과거 굽타 일가의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며 고액의 연봉을 챙겼다.

 야당은 “나라가 마피아 같은 굽타 가족의 부패 카르텔에 붙잡힌 인질이 됐다”며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굽타 형제들은 여론이 악화되자 남아공 사업을 급하게 정리하고 있다. 임기가 2019년까지인 주마 대통령은 올해에만 두 번째 탄핵심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3월 고향 사저 개보수에 국고 166억 원을 쏟아부은 혐의로 헌법재판소로부터 일부 금액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받은 직후 탄핵됐지만 의회 표결에서 부결돼 간신히 자리를 지켰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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