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처럼 들렸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이 9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현실이 됐다. 파격적인 경제 정책의 변화를 예고해온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지며 ‘검은 수요일’을 연출했다.
아시아 금융시장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1,930 선까지 주저앉았다가 전날보다 2.25% 하락한 1,958.38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3.92% 급락한 599.74로 마감해 1년 9개월 만에 600 선이 무너졌다. 일본(―5.36%) 홍콩(―2.16%) 등 다른 아시아 증시도 줄줄이 급락했다.
국내 증시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17% 가까이 급등해 브렉시트 결정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외환시장 역시 패닉에 빠져 원-달러 환율은 장중 22원 넘게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한 끝에 14.5원 오른 1149.5원에 마감했다. 이날 오후 10시 30분(한국 시간) 현재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증시는 1%대의 하락세를 보였다.
트럼프의 예상 밖 당선에 국내외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에서 일제히 발을 빼고 안전 자산으로 몰렸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엔화는 3% 이상의 초강세를 보이며 엔-달러 환율이 장중 101엔대로 추락했다. 국제 금값도 5% 가까이 치솟았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지정학적 리스크, 정책 불확실성 등이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가 쏟아낸 인기 영합성 정책들이 구체화할 때까지 금융시장은 불확실성에 짓눌려 당분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과 고율의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향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면 아시아 등 신흥국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노무라증권 조사 결과 트럼프가 당선되면 글로벌 투자자의 약 70%가 아시아 증시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여기에다 트럼프가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교체를 공언해온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12월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 경제의 룰을 만들어 왔던 미국의 역할이 변화하면서 브렉시트 때보다 더 큰 충격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은 이날 일제히 긴급회의를 열고 24시간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정부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금융, 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 등 외화자금 유입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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