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가고, ‘팍스 시노-아메리카나(Pax Sino-Americana)’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 경제는 어떤가. 미국의 많은 자산을 중국인들이 소유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은 더 이상 봉쇄할 수 없는 힘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으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정책인가. 미국의 민중은 그 돈을 내기 싫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의 일자리를 아시아에 빼앗기기 싫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 정치인들과 국민 간의 인식은 이처럼 괴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 정치의 이익이 어찌 이러한 민심 기반의 변화를 이길 수 있겠는가. 이 괴리가 커지면서 정치적 대안 세력을 찾고 있던 민중이 이번 대선을 통해 트럼프에게 어부지리를 안긴 것이다.
아시아에서 멀어져 가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한국은 미국의 전진기지가 아니고 무역 흑자를 크게 가져가는 얄미운 교역국 이미지가 부각된다. 그래서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가치에 맞게 안보 비용과 통상 관계를 재수립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측과 양자 협상을 벌이는 경우, 협상력·자원 측면에서 우리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북한 핵, 핵우산, 주한미군 등 협상 무기들을 쥐고 아시아에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초강대국과 어떻게 재협상 테이블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통상교섭본부를 폐지하고 통상 조직을 비인기 부서로 전락시킨 우리가 아닌가. 트럼프 측은 환율 문제를 제기하며, 인위적 환율 절하 폭만큼을 보조금으로 간주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넣겠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무역흑자를 많이 보는 나라의 제품에 최대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의 양자 협상이 아닌 다자 협상의 틀 속으로 트럼프 측을 끌어들여야 한다. 다자의 틀에서는 통상 이슈를 다른 이슈와 차단하여 협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본, 중국, 멕시코 등과 공조하며 다자 차원에서 한미 통상 이슈를 재협상해 나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트럼프 당선과 함께 용도 폐기된 TPP에 연연하고, 한미 FTA 지키기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창조적 파괴의 아이디어가 우리의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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