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추진하겠다”는 문 전 대표에 맞춰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야 3당과 시민사회 간의 ‘비상시국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제1 야당이 거국중립내각 제안을 철회하고 국정 운영의 한 축인 국회를 벗어나 이른바 진보좌파단체까지 포함한 ‘거리세력’과 연대해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설 의도를 밝힌 것이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에 이어 민주당까지 14일 ‘대통령 2선 후퇴’에서 ‘대통령 퇴진’으로 당론을 변경함으로써 야권은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게 됐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구체적인 대통령의 퇴진 로드맵은 비상기구에 맡기자”며 과도내각 구성을 통한 최순실 사태 규명 및 차기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주장한 것은 중대한 변화다. 헌법에도 나와있지 않고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은 ‘비상기구’에 국가운영의 로드맵을 맡기자니, 무슨 권한으로 이 정체불명의 기구가 과도내각을 구성하고 차기 대선까지 관리하도록 한다는 건가.
문 전 대표는 4월 총선에서 옛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 두 명을 지지해 20대 국회 원내 입성을 도운 전력이 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 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고까지 지적했음에도 문 전 대표는 “정체성 논쟁은 부질없다”고 했다. 이른바 진보좌파 원로로 구성된 ‘원탁회의’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강권한 것을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기억할 것이다. 추 대표가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했다 취소한 것이 ‘시민사회와의 공조 계기’가 됐다지만 이 ‘비상기구’가 19일 촛불시위를 최대한 키워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국가원수로서 권위와 정당성을 잃은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한, 국정 공백 사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야당이 강조하는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서는 국회가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야당이 주장했던 거국내각이든, 현재 주장하는 과도내각이든 차기 대선까지 국정을 관리할 ‘대통령 대리인’은 필요하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당장 야당 추천 총리를 누구로 할지부터 논의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다.
국민은 야당이 과연 단일 총리 후보를 낼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야당은 총리를 추천하는 순간부터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야권 요구대로 대통령이 무조건 퇴진하거나 시한을 정해놓고 퇴진하면 단일 총리에 합의할 정치적 능력은 있는가. 단일 총리를 내든, 대통령 탄핵 절차를 밟든 민주당은 헌법 테두리 내에서 정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이 국정 공백을 줄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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