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400만 명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와 미래를 위해 연설하고 있다. 저들은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지금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 나는 거대한 불의(不義)의 희생양이다.”
한국 얘기가 아니다. 지구촌 반대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69)이 5월 12일 상원의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 개시 결정으로 직무가 정지되자 대통령궁을 떠나며 외친 말이다. 연정 파트너로 손잡은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까지도 대통령 권한을 탐내 등을 돌렸으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호세프가 누구인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남미 좌파 정치인의 아이콘이다. 호세프는 ‘대통령 탄핵은 무혈 쿠데타’라며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10월 20일 대법원은 기각했다. 한 번 떠난 민심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호세프가 왜 그리 몸부림쳤는지 궁금했다. 대선이 있던 2014년 호세프 대통령이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리고선 제때 갚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이 돈은 실업보험과 저가주택 공급 등 서민의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데 투입됐다. 대통령이 착복한 돈은 한 푼도 없다. 나랏빚을 늘리지 않는 척하면서 선심성 복지카드를 내놓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기업으로 치면 사장이 임기 연장 욕심에 적자 장부를 흑자로 둔갑시키는 분식(粉飾)회계를 몰래 하다가 주주들에게 들통난 꼴이다. 하지만 국민들을 화나게 한 건 따로 있었다.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스캔들에 대한 검찰의 정경유착 수사가 호세프 측근들을 겨냥하자 민심은 폭발했다. 궁지에 몰린 호세프는 한술 더 뜬다. 적반하장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자신의 멘토 룰라를 수석장관(총리 격) 카드로 꺼내들어 몰락을 자초했다.
2013년 3월 79%까지 치솟은 지지율은 하원에서 탄핵 의결 직전인 올 3월엔 10%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호세프와 룰라를 감옥에 처넣어라’는 데모에 브라질 400여 개 도시에서 300만 명이 몰렸지만 대통령은 백기를 들지 않았다. 하원 탄핵 결정(4월 17일)에 이어 상원의 탄핵심판 절차 개시 결정(5월 12일)이 이어졌다. 그래도 호세프는 정부 사업에 국책은행 동원은 역대 정부의 관례라고 강변했다. 브라질 재정책임법은 2000년 5월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로 만들어졌다. 재선에 눈먼 호세프에겐 보였을 턱이 없다.
지금 한국의 위기가 브라질과 비슷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놀랍다. 승승장구하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몰락과 한없이 곤두박질치는 지지율, 거리로 뛰쳐나오는 국민들, 대통령의 버티기…. 다른 점이라면 브라질은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밖에 안 되고 호세프는 연임한 다음 해 바로 탄핵된 것 정도일 것이다.
브라질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 탄핵 절차가 보통 까다롭지 않다. 브라질 연방회계법원이 호세프의 법 위반 사실을 적발한 때가 지난해 10월 7일이었다. 하원에서 탄핵 청원을 시작한 게 2개월 후인 2015년 12월 8일이다. 대통령 직무정지로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것은 올해 5월 12일이고, 하원 상원을 거쳐 실제 탄핵이 결정된 것은 8월 31일이다. 수사에서 탄핵 결정까지 장장 11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 중 브라질 정부는 식물정부 상태였다. 지카 바이러스는 창궐했고 올림픽도 대통령 부재 상태에서 치러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공모자로 지목된 것은 대통령의 수치를 넘어 나라에 큰 불행이다. 많은 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호세프의 전철을 밟기로 작심한 것 같아 걱정이다. 문화융성이란 미명 아래 대기업 팔을 비틀고 일개 동네 아낙이 청와대 권력을 사유화하며 온갖 잇속을 차린 것도 모자라 장차관 인사에까지 개입한 전대미문의 범죄를 배고픈 사람에게 복지를 늘려준 호세프의 재정책임법 위반과 비교할 수 있을까.
1997년 말 나라 곳간이 텅 비었을 때 한국에 쳐들어온 IMF는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에다 생살을 도려내는 금융 구조조정과 기업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부채비율 200%와 회계투명성,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만 했다. 무자비한 IMF 기준을 맞추느라 구조조정 칼바람이 휘몰아쳤고 수많은 가장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평온하던 가정도 송두리째 흔들렸다. 치욕적인 IMF 사태 후 20년 동안 온 국민이 땀 흘려 차곡차곡 쌓아온 국제사회의 신뢰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똬리를 튼 비선 실세와 함께 단 한방에 날려버렸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추려고 한국 정부와 기업이 그토록 피땀 흘려 마련해 놓은 국정운영 시스템과 기업 경영체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 주말 한 주한 외교사절이 “북한 핵실험보다 광화문에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가 더욱 신기하다”고 기자에게 한 말에 아직도 낯이 화끈거린다. 호세프에게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한반도 시계추를 되돌려버린 대통령의 시계는 지금 몇 년을 가리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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