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트럼프發 ‘뉴내셔널리즘’에 노출된 한국의 취약계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2일 00시 00분


 페루 리마에서 19, 20일(현지 시간)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무역을 수호하자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특정 이념과 상관없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 지 오래다. 지난해 기준 주요 20개국(G20)의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은 금융위기 직전보다 40% 감소했고, 국가 간 은행대출은 최근 2년 동안 2조6000억 달러가량 줄었다. 겉으로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자국의 일자리와 국내총생산 증대에 효과가 큰 내수에 전력투구한 결과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 해외 순방의 종착역 페루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최악의 협정’이라고 비난해 실현 가능성은 뚝 떨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주요 2개국(G2)과 신흥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국수주의로 몰려가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이익은 줄어도 상관없다는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경제협력은 공허한 정치 구호에 그칠 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세계를 지금보다 더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뉴내셔널리즘’이라고 우려했다. 무역을 통한 파이가 줄면 빈곤층의 생활고가 심해지고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지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한국은 저소득층과 자산 하위층 가구를 합친 ‘경제적 취약 계층’이 전체 가구의 40%에 이른다. 미국의 트럼프 열풍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초래한 소외 계층의 박탈감이 우리 사회에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APEC 회의에 참석한 황교안 총리는 ‘자유무역 찬가’만 공허하게 외쳤을 뿐 주최국인 페루 대통령 말고는 정상회담 한 번 못했다. 이것이 지금 한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도널드 트럼프#뉴내셔널리즘#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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