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민주당(1875년 창당), 스페인 사회당(1879년), 영국 노동당(1906년) 등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유럽 근현대 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반(反)난민, 고립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전통적인 좌우 양당 대신 보수와 극우 정당이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사회주의 계열은 전멸을 우려할 상황이다. 유럽 5대 강대국 중 영국 독일 스페인은 이미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조만간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해 어떤 후보도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15%를 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인 공화당과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N) 후보가 결선 투표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민주당 마테오 렌치 총리는 상원 의석수를 줄이고 행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개헌안을 제안했으나 다음 달 4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부결될 경우 즉각 사퇴가 불가피하다.
이미 야당이 된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스페인 사회당은 당분간 정권을 잡기 어려운 게 냉엄한 현실이다. 영국과 스페인은 다음 총선까지 3년 이상 남아 있다. 내년 9월 총선을 치르는 독일 사민당의 지지율은 총리직 4연임 도전을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에 두 자릿수로 뒤처져 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와 네덜란드도 사회주의 계열이 극우 정당에 밀려 3당과 4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스페인 말라가대의 마누엘 아리아스 말도나도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이 누더기가 되고 있다. 그들의 지지 계층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이 상황을 극복할 확실한 리더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기업 국유화나 소득 재분배 같은 좌파 이념보다 민영화와 공공개혁 등을 추진하며 중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같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성향이 강한 극좌 정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에 맞서 영국 노동당은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 대표, 스페인 사회당은 페드로 산체스 대표를 내세워 노동자 중심의 전통 강성 좌파로 돌아섰다. 그러자 보수 우파에 중도를 내주는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 성적표도 우파 정부에 밀리고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비슷한 시기에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우파 자유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은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으로 실업률을 20% 밑으로 끌어내리고 3% 성장을 이뤄냈다. 반면 좌파 시리자당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그리스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매고 있다.
사회주의 정당을 대표할 스타 정치인이 없자 2007년 퇴임한 블레어 전 총리가 정계에 복귀한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브렉시트 재투표를 주장하며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를 겨냥하는 동시에 친정인 노동당의 코빈 대표에 대해서도 “정신이상자(nutter)”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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