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미 英대사로 패라지 원해”… 反세계화 닮은꼴에 호감 표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4일 03시 00분


他國 인사 거론 외교적 결례… 메이 英총리 즉각 불쾌감 표명
패라지 “영미 관계 다지고 싶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끈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독립당(UKIP) 대표(사진)를 신임 주미 영국대사로 맞이하고 싶다고 밝혔다. 각각 ‘미국 우선주의’와 ‘탈(脫)유럽’을 외치며 국제정치 무대에 신고립주의 바람을 몰고 온 영미 양국 보수 진영의 성공한 막말 정치인들이 ‘브로맨스(남성들 사이의 애틋한 감정)’를 내비쳤다.

 트럼프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많은 사람이 패라지가 주미대사로서 영국을 대표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는 아주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이 내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면 초대 주미 영국대사로 패라지를 맞이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가 타국 외교관 인사에 개입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즉각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2일 대변인을 통해 “능력 있는 대사가 이미 미국에 나가 있다”며 트럼프의 제안을 일축했다. 하지만 패라지는 즉각 극우 성향 온라인매체 브레이트바트뉴스에 “세상이 바뀌었고 다우닝 가도 바뀌어야 한다. 국익을 위해 영미 정부 간의 관계를 다지고 싶다”며 영미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냈다.

 패라지는 트럼프는 물론이고 수석전략가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스티븐 배넌과도 매일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일각에선 “(메이 총리가) 트럼프와 직통 핫라인을 갖고 있는 패라지를 이용하지 않은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럽연합 탈퇴 결정 후 미국과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으로 트럼프의 국빈방문까지 고려하고 있는 영국 정부가 새 대통령과 친선을 다질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패라지는 외교 기술보다는 막말로 잘 알려져 있다”며 “어린아이에게 사슬톱을 맡기는 격”이라는 영국 내 비판 여론을 소개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 때부터 패라지와 닮은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가 “멕시코인들은 마약과 범죄를 미국에 가져온다”는 말로 반(反)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 무대에 데뷔했듯 패라지는 같은 해 열린 영국 총선 유세에서 “한 해 7000명에 이르는 에이즈 감염자 중 60%는 영국인이 아니다”라며 이민자를 겨냥했다. 두 사람은 이민자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반세계화 성향에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라는 점도 빼닮았다.

 패라지는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다.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사업을 해 부호(富豪)가 된 사람인데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옹호하는가 하면 5월 영국 ITV방송에 출연해 “(내가 미국인이라면) 돈을 준다고 해도 힐러리 클린턴을 뽑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패라지를 주미대사로 보내 달라고 한 것은 ‘해외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한 정치인’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트럼프는 8월 미시시피 주에서 열린 유세에 패라지를 ‘미스터 브렉시트(Mr. Brexit)’라며 찬조연사로 초청했다. 당시 패라지는 “기성정치에 맞설 사람들이 투표장으로 나선다면 우리가 브렉시트를 이룬 것처럼 여론조사, 정치평론가, 워싱턴을 모두 누를 수 있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트럼프#메이#패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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