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프랑스 파리 18구에 마련된 난민경유센터 앞에서 10대 중반의 흑인 청소년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기자에게 부탁했다. 중부 아프리카의 차드는 수십 년째 이어진 가혹한 독재와 내전으로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홀로 탈출해 나흘 전 파리에 도착했다는 그는 “대사관에 가 여권을 만든 뒤 프랑스에서 살고 싶다”며 “파리에 이런 안식처가 생겨 행복하다”고 말했다.
파리시는 프랑스철도청의 옛 철도기지를 개조해 10일 난민경유센터 문을 열었다. 총면적 1만3550m²로 최대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 최대 규모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10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오후 3시가 되자 보따리를 든 난민 10여 명이 센터로 몰려왔다. 자원봉사자들은 “남은 침대가 없다. 내일 아침 6시에 센터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때 오라”고 안내했다. 자원봉사자 이방은 “하루에 50명 이상 받기 어려운데 200명 넘게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는 아르반은 “오늘은 길이나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자고 내일 다시 올 것”이라며 빵과 주스를 받아들고 떠났다.
세계적인 관광도시 파리에는 무작정 상경한 난민 4000명 정도가 머물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아무곳에나 텐트를 치고 구걸하며 지내왔으나 파리 센터 개장으로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의료시설도 있고 이민청 직원 16명이 상주하며 난민 정보도 준다.
사회당 소속인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망명을 원하든 아니든 받아들여지든 거절당하든 모두 인간적으로 맞이해야 한다”며 난민경유센터 건립을 추진해 결실을 거뒀다. 난민들이 여기서 머물며 새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투자비 650만 유로(약 81억2500만 원) 중 80%를 파리시가 부담했다. 이번에 지어진 센터는 남성 전용으로 여성과 아이를 위한 센터(350명 수용)는 내년 1월 파리 다른 곳에 들어선다.
여기서 만난 난민 대부분은 ‘이제 프랑스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민청 당국자는 “난민들을 받아줄 수용소 부지를 물색하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전국에 450개 임시 수용소를 만들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이 프랑스에 터전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 중 허가가 난 것은 20%밖에 안 된다. 어렵게 건립된 센터도 1년 반 뒤엔 원래 계획된 콩도르세 대학 캠퍼스 건립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시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곳 주변이 악취와 범죄의 온상이 됐던 칼레나 파리 스탈린그라드역 난민캠프처럼 될까봐 경찰의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주민들도 꺼리는 눈치다.
지난달 칼레캠프를 해체하면서 난민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프랑스나 칼레 해체로 한시름 놓은 영국은 센터 건립이 난민들의 유럽 유입을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한다. 특히 영국은 난민경유센터가 영국과 이어지는 유로스타를 타는 파리북역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긴장하고 있다. 더선은 “이들은 최장 10일밖에 머물지 못해 그 다음엔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으로 오려고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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