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한민구 국방장관처럼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장관들이 사명감을 갖고 본연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안부를 묻자 나온 첫마디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장관이 할 일이 너무 많아 전화 통화만 하다 이뤄진 만남이었다. 한 장관은 기획전략통으로 불린다. 분석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파벌을 구축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수재형’ 인물로 알려진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의 낙마를 아쉬워하는 군내 여론이 많았는데 곧바로 한 장관이 임명되자 “될 사람이 되었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최순실표 인사 파행이 국방장관만큼은 비켜 간 것 같아 다행이다.

일본은 소극적이었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은 4년 전 외교통상부가 주관해 추진했다.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한다는 반일 여론으로 무산됐지만 차관회의도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즉석 안건으로 전격 처리하는 바람에 여론의 역풍이 더 심했다.

 
한 장관에게 외교부 추진 사안을 국방부가 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국가 간 협정이지만 내용적으론 안보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맡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같은 국정공백 상황에서 “내 일이 아니다”라고 미루면 편할 일이었다. 오히려 해보겠다고 덤비다가 반발 여론에 휘둘릴 것이 자명하다는 점을 한 장관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임될 때 해임되더라도 안보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는 장관의 표정엔 외부의 힘에 의해 밀려서 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소신껏 한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북한 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한일 간 정보교환에 소극적이었다. 한국의 대북 정보능력이 미일(美日)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한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대북정보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속내였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이 5기나 되고 이지스함 6척, 장거리 탐지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 정보수집, 해상 작전능력에서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잠수함도 많고 원자력이 아닌 디젤엔진이면서도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최첨단이다.

 일본 자위대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가 목적인 군대다. 따라서 공격형 무기인 중장거리 미사일 같은 것은 없지만 감청 같은 방어능력은 월등하다. 1983년 격추된 대한항공(KAL) 007기가 소련 전투기 소행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가장 먼저 안 것도 소련 비행기 조종사와 소련군의 교신을 감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 김일성이 자연사했다는 것도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알았다.

한미동맹 보완재 될 것

 북한 잠수함,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탐지하고 격퇴하는 능력이 취약한 우리 입장에서 일본과 해상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도 휴민트(인적정보)나 탈북자들의 생생한 정보를 통해 나름대로 높은 수준의 대북정보 분석 능력 및 감청 능력을 갖고 있어 북핵 위협에 맞서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한일 정보 공유는 한미동맹의 좋은 보완재가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한 장관 해임건의안을 철회한다니 다행이다. 국정이 혼란스러워도 안보전선엔 이상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일하기 어려워진 이때 총리, 장관들이 본연의 업무를 더 적극적으로 수행했으면 한다. 그것이 최순실 게이트로 깊어진 국민들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더는 일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북한 잠수함#한민구#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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