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하면 카키색 군복을 입고 턱수염을 기르고 아바나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카스트로의 리더십이 턱수염에서 나온다고 믿은 나머지 턱수염을 잘라버릴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스포츠맨인 그는 다른 쿠바인들처럼 열렬한 야구광이었다. 북한 김일성의 취미는 뭐였나. 총 쏘기? 잘 떠오르지 않는다. 둘 다 독재자였지만 김일성은 경외심으로 체제를 유지했고 카스트로는 친근감으로 체제를 유지했다.
▷김일성은 가는 곳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웠지만 쿠바에는 어디에도 카스트로의 동상은 없다. 그 대신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동상이 있다. 쿠바는 가톨릭의 전통이 깊어 권력자의 우상화가 쉽지 않았던 것일까. 다만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가톨릭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三位)일체처럼 이위(二位)일체였다. 이상주의자 게바라는 현실주의자 카스트로 덕분에 불멸을 얻었고 현실주의자 카스트로는 이상주의자 게바라 덕분에 90세 천수를 누렸다.
▷카스트로는 체제에 불만을 가진 주민에게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나왔다. 1980년 몇몇 쿠바인이 아바나의 페루대사관 정문을 트럭으로 부수고 들어가 망명을 요청한 이후 12만5000명이 쿠바를 떠났다. 카스트로가 마리엘 항구를 개방하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하자 미국은 오히려 항구를 봉쇄하라고 압력을 넣어야 했다. 1994년 경제위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카스트로는 김일성과 달리 체제에 가해지는 압력을 눌러서가 아니라 풀어서 조절할 줄 알았다. 그것이 쿠바를 북한보다는 덜 공포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카스트로를 ‘야만적 독재자’라고 불렀다. 그러면 김일성 일가를 어떤 독재자라고 부를까. 카스트로는 쿠바를 개미에, 미국을 코끼리에 비유하면서 “개미는 코끼리가 결심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국가의 처지를 한탄한 적이 있다. 카스트로 생전에 그 개미가 코끼리의 코앞에서 57년간 살아남았다. 기적 같은 일이지만 우리가 북한을 떠올리면 썩 기분 좋은 기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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