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짧았던 번영’ 이대로 막 내릴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3시 00분


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몇 년 전 휴가 때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모두 세계사에서 큰 발자국을 남긴 국가였다. 평소 역사의 흥망성쇠에 관심이 많아 ‘비용이 만만찮지만 한번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터키의 톱카프 궁전박물관에서 그들의 찬란한 영광을 떠올렸다. ‘잘나간 조상들’이 물려준 역사 유산 덕분에 세계인들을 끌어들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여행은 내 나라 대한민국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해외에서 재발견한 ‘내 나라’

 세 나라 모두 과거는 화려했지만 현재는 부럽지 않았다. 이집트는 곳곳에서 빈곤이 묻어났고 터키의 생활수준도 한국에 못 미쳤다. 그리스 역시 성장지향 국가와는 거리가 먼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관광산업 외에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제조업과 기업이 드물다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냉정히 말해 한국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적이 없다. 국토는 좁고 천연자원은 부족하다. 제대로 내세울 만한 역사 유적도 드물다. 망국(亡國)으로 치달은 조선의 실패와 식민지의 아픈 경험에 이어 분단에 따른 내전까지 치렀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대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이런 나라가 준(準)선진국으로 변모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리 많은 봉급으로 여기지 않는 연봉 5000만 원이면 지구촌 전체에서는 상위 1%의 고소득자다.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방 흙수저’ 출신인 나는 빈곤과 폐허의 땅을 남부럽지 않은 나라로 바꿔놓은 앞 세대의 선각자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이 도약에 성공한 지난 50여 년이란 기간은 큰 역사의 흐름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짧았던 번영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내 기업 총매출액 2년 연속 첫 감소, 내년 호황 전망 업종 전무(全無) 같은 우울한 통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연말 특수(特需) 분위기는 실종됐고 민생의 한숨은 깊어간다. ‘최순실 사태’에 따른 국가 리더십 공백과 전방위 기업 수사까지 겹치면서 기업과 공직사회는 어수선하다. 올 4분기 경제성장률은 충격적 수준으로 추락할 위험성이 높다. 해외발(發) 대형 악재가 터지거나 거대 야당이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까지 밀어붙인다면 경제와 기업들은 회복 불능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며칠 전 경제부처 장관과 출입기자로 20여 년 전 인연을 맺은 어느 원로(元老)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대로 가면 경제가 절단 난다”며 대통령의 거취는 법치주의에 따라 처리하고 이제 냉철하게 경제와 안보 위기 방지에 관심을 가질 때라고 강조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60대 언론계 선배는 “최근 대학동기 모임에서 ‘이러다가 나라가 큰일 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쏟아졌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냉철하게 경제 생각해야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퇴진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됐다. 대통령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국민이라도 국가 혼란이 길어져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의 성취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동향을 주목하는 지금 ‘정치 리스크’가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잠시 거쳐 가는 대통령과 정권은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와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이 추락하고 ‘빈곤의 시절’로 뒷걸음질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터키#이집트#박근혜#조기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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