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한국의 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미국과의 조율, 중국의 압박에 대한 대처, 북한의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삼중고(三重苦)에 한국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험난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 앞선다. 국내가 안정되어야 외교도 잘되고 안보도 튼튼해지는데,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으고 국론을 결집하여 안정을 찾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국내외 불안감을 더한다.
불안감 부추기는 당리당략
가장 시급한 것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정부와의 정책 조율과 협력의 문제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 이후 우리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동맹 정책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탄핵 정국으로 인해 미국은 한국의 정치 불안정과 앞으로의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완성되기 전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진폭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접근이 절실하다. 우리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고 있지만 신뢰도는 떨어진다. 정치적 의지와 지도력이 뒷받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北 평화공세에 ‘南南 갈등’ 우려
미국은 우선적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연기되거나 결정 자체가 번복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다. 만일 사드 배치 결정이 번복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정부는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제기하며 통상 압박을 가해 올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도발을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준비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통상 문제에서부터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대미 협상력과 설득력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엄청나게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사드 배치가 가까워 올수록 중국은 경제 보복을 비롯한 다양한 압박 카드를 이용하여 ‘한국 흔들기’를 더욱 심하게 할 것이다. 차기 한국 정부에서 사드 배치 결정이 번복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북핵 문제에 대한 조율도 어려울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2321호에 찬성했지만 중국이 제재와 압박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강조함과 동시에 평화협정 문제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통상문제로 인해 미국과 중국 간 마찰과 갈등이 증가하면 대북 정책에서 한중은 물론이고 미중 간 협의와 협력은 더욱 힘들어진다. 상황이 더욱 꼬여가고 있는데 탄핵 사태로 인해 한국의 주도권은 실종되고 입지는 약화되었다. 얼마 가지 않을 정부, 뭘 할 수 없는 정부의 말을 중국이 귀담아듣고 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 공세로 나온다면 국내에서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남남 갈등은 우리가 보아 왔던 이전의 갈등보다 더욱 심각하고 오래갈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단호한 대응도 가능한데 탄핵 정국에서 여야가 북한 도발을 규탄은 하되 각각 다른 접근 방식을 요구할 때 정부의 강력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북한에 넘어가고 국민은 더 커진 안보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접근 엇갈리면 즉각대응 어려워
탄핵 정국이라고 하여 여야가 모든 문제에 대해 갈등하고 대립하거나, 모든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면 불안과 위기만을 부른다.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여야가 지혜를 모아 초당적 접근을 모색해야만 국민이 안심하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정치권이 국민에 대해 가져야 할 의무이고, 그래야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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