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70)은 2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국무장관 인선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여러 후보가 물망에 올랐지만 참모들 의견이 제각각이고 후보마다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았다. 이날 사무실을 찾아와 우연히 트럼프의 고민을 들은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64·사진)를 추천했다. 트럼프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기업하기 힘든 오지에서 경영한 경험이 큰 자산”이라는 게이츠의 말에 솔깃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하루 전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을 만나 틸러슨을 추천했다. 틸러슨이 CEO인 엑손모빌은 게이츠와 라이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컨설팅회사 라이스하들리게이츠 고객 회사였다. 라이스는 “틸러슨과 사업상 골프를 치며 국제 정세를 논의했는데 중동, 러시아, 인도네시아, 남미에 식견이 높았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이후 트럼프는 틸러슨을 두 시간 면담한 뒤 참모들에게 “다른 후보들과는 다른 수준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한 틸러슨 낙점의 순간이다.
트럼프가 친(親)러시아 인사인 틸러슨을 반대하는 당내 여론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공화당의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틸러슨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상원의원 인준에서 찬성하지 않으면 틸러슨이 국무장관에 오를 수 없다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분석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를 놓고 고민할 때 게이츠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우정’과 혼동하는 건 실수다. 틸러슨은 매우 냉정한 현실주의자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의 옛정에 휩쓸려 국정을 망치진 않을 사람이란 얘기였다.
트럼프는 장관 인선으로 시끄러울수록 ‘마이웨이’를 고수하려 했다. WP는 “트럼프는 참모들 압박에 떠밀려 결정하기 싫어했다. 장관 후보자 이름이 밖으로 노출되고 참모들이 마음에 드는 후보를 편들자 트럼프는 환멸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후보들을 검증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강하게 밀었고 대선 과정에 의리를 지킨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한때 국무장관 1순위였지만 72세 고령이어서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민감한 사안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트럼프가 우려해 포기했다.
지난달 말 추수감사절 연휴에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족들과 머무는 동안 트럼프의 마음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쪽으로 기울었다. 롬니는 과거 행정부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후회와 더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트럼프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국무장관만 하고 싶다는 조건을 달았다. 트럼프도 자신을 ‘사기꾼’ ‘거짓말쟁이’라고 욕했던 정적과 손잡으며 화해 무드를 연출할 수 있어 롬니를 반겼다.
하지만 트럼프 참모와 지지자들은 “롬니가 우리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롬니는 지난일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며 사과를 거절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를 지정학적 최대 적수로 생각하는 롬니와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싶은 트럼프의 견해차는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은 자서전을 써준 여작가와 사랑에 빠져 기밀을 누설한 전력으로 제외됐다. 밥 코커 상원의원(테네시)도 지난달 29일 트럼프와 만나 후보로 떠올랐지만 국무장관으로는 약하다는 평이 나오며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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