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중 관계와 관련하여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대선 기간 중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공세는 시작에 불과했다. 대선 후에는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의 전화 통화를 포함해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존 입장을 흔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아가 러시아가 미국의 적이라는 관념을 깨고 국무장관에 친(親)러시아 기업인인 렉스 틸러슨을 낙점하며 미-러 관계 개선 의지를 더욱 선명히 하고 있다. 1972년 미중 데탕트와는 역으로 미-러 데탕트 성향의 정책을 편다면 중국에는 상당한 전략적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은 정치적 교체기인 내년 말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이미 권력 암투가 시작되었다. 시진핑 주석도 권위와 리더십에 손상을 입지 않아야 하는 시기이기에 미국의 압력에 쉽게 물러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중 관계는 단기적으로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는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의 기반을 쌓기 위해 미중 모두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눈앞의 상황이 조화로운 협력은커녕 미중 모두로부터 선택의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첨예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앞에서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는 그간 모래성을 쌓아 왔다는 느낌이다.
한미 동맹은 최근 외형적인 면에서 꾸준히 강화되었다.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2009년),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2013년), ‘한미 관계 현황 공동설명서’(2015년)를 통해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포괄적 전략동맹 구축을 거듭 확인하였다.
작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올해 7월 한국 내 사드 배치 결정 발표에 이어 11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미국이 ‘희망’했던 사안들이 일각에서는 ‘갑작스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미 동맹은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 하나에 주한미군의 철수와 동맹의 ‘방기’를 우려하고 있다.
내년 수교 25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중 관계는 어떤가. 작년 많은 이들이 역사상 최상의 관계라 평가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대북제재와 사드 배치 이슈로 관계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한중 관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군사·안보 분야에서 터져 나온 이 같은 문제들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충돌한다. 결과에 따라 한국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역할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합의를 거친 한국의 국가목표와 국익의 분명한 제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民)·관(官)·정(政) 정책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중요한 현안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때 약한 나라는 국론 분열로 가고, 강한 나라는 국론을 모아 간다. 정책 커뮤니티의 치열한 논의를 보며 국민들은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지도자들이 받아들여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큰 틀에서 미중이 한반도에 투영하는 정책의 본질적인 목표를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수용하는 새로운 국가 모델이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강화를,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완충’ 역할을 원한다. 따라서 미중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평화적 준(準)완충국가’의 모델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관련국 최고 지도자들의 전략적 선택의 폭을 가능한 한 넓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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