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는커녕… “가미카제 군인 용감한 사람” 치켜세운 아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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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 75년만에 참배
“日 평화 행보에 긍지” 不戰의 맹세만… 오바마 “전쟁의 상처, 우애로 치유”
한국 외교부 “日, 화해 노력 필요”… 中매체 “한국-중국부터 찾아야”

 “전쟁의 참화는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7일 오전(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 진주만의 추모시설인 애리조나기념관을 찾아 일본이 저지른 진주만 공습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부전(不戰)의 맹세’, 즉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현직 일본 총리가 애리조나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아베 총리가 75년 전인 1941년 12월 7일 미국인 2403명이 숨진 진주만을 찾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인 데는 패전의 짐을 털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애도를 표하고 평화를 강조했지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미 상하원 합동연설 때 진주만 공습에 대해 “깊은 회오(悔悟·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음)를 느낀다”고 했던 것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 일본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피해국들에 대한 메시지도 없었다. 자신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일본 우익 세력에 ‘사과 외교’로 비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연설에서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군 격납고를 향해 가미카제(자살 특공대) 공격을 했던 이다 후사타(飯田房太) 해군 중좌를 “용감한 사람”이라 치켜세운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이다 중좌의 추락 지점에 비를 세운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라 공격을 받은 미군들이었다. 용감한 사람이 용감한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격렬한 전쟁을 했던 미일은 깊고 강하게 맺어진 동맹이 됐다. 이는 내일을 여는 희망의 동맹”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전후(戰後)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부전의 맹세를 견지했다”며 “전후 70년 평화국가의 행보에 조용한 긍지를 느낀다”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방문은 전쟁의 상처가 우애로 치유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며 “미일 관계는 세계평화의 주춧돌이며 양국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답했다. 또 “평화의 열매가 전쟁의 약탈보다 훨씬 크다”며 “(전쟁으로) 증오가 뜨겁게 타오를 때조차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악마로 만들려는 충동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와이에서 마지막 휴가를 보내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정을 아베 총리와 함께했다. 회견 전 두 정상은 호놀룰루의 H M 스미스캠프에서 마지막 정상회담을 갖고 동아시아 안보와 기후변화 등을 논의했다.

 중국은 아베 총리를 맹비난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는 반드시 가해자의 진정성 있고 깊은 반성의 기초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수차례의 ‘영리한 쇼’가 한 번의 진정한 깊은 반성보다 못하다”고 비판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도 사설을 통해 “일본이 역사 문제의 화해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진주만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을 찾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주만 공습 때 항공모함 히류(飛龍)에서 정비병으로 근무했던 다키모토 구니요시(瀧本邦慶) 씨는 “아베의 부전 맹세는 거짓말”이라며 “아베 총리가 안보관련법을 강행 처리하고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는 등 실제로는 전쟁할 수 있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 침략 전쟁의 피해자인 주변국과도 화해와 협력을 위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조숭호 기자
#가미카제#아베#진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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