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복장 괴한, 새해 파티장 무차별 총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새해 첫날 새벽 피로 물든 이스탄불

 새해 첫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도 전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2017년 새해를 맞는 인파로 가득 찬 이스탄불 나이트클럽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무장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면서 경찰 1명을 포함해 최소 39명이 숨지고 69명이 다쳤다. 범인은 총격 직후 도망쳐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하얀색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남성 괴한은 1일 오전 1시 15분경 이스탄불 레이나 나이트클럽 입구에 서 있던 21세의 경찰을 총으로 쏴 사살하고 내부로 침입했다. 그는 클럽 안에 있던 700여 명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 이 클럽은 패리스 힐턴, 지젤 번천, 우마 서먼, 케빈 코스트너, 스팅 등 유명 스타들이 종종 찾는 고급 클럽이다.

 놀란 시민들은 밖으로 뛰쳐나왔고, 일부는 바로 옆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뛰어들어 몸을 피했다. 좁은 공간 안에 700여 명이 몰려 있다 보니 대피가 늦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BBC가 전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은 곳이다 보니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21명 중 16명이 외국인이었다. 사망자들의 국적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모로코, 레바논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가 많았다. 사상자 중에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이스탄불 레이나 나이트클럽 테러범이 1일 새벽 범행 직후 하얀색 산타클로스 복장을 벗어던지고 있다.  미러 홈페이지 캡처
터키 이스탄불 레이나 나이트클럽 테러범이 1일 새벽 범행 직후 하얀색 산타클로스 복장을 벗어던지고 있다. 미러 홈페이지 캡처
 범인은 총기 난사 직후 클럽에서 산타 옷을 벗어던지고 도주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지만 여전히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범인은 노란색 택시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일부 목격자 진술에 따라 범인이 최대 3명이라는 현지 보도가 이어졌지만 바시프 샤힌 이스탄불 주지사는 범인이 1명이라고 밝혔다. 터키 주재 한국대사관은 도주 중인 테러범의 2차 공격이 우려된다며 교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번 테러 공격을 “나라의 정신을 파괴하고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극악무도한 시도”라고 규탄하고 “터키는 테러와 싸우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단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터키 경찰은 그가 아랍어로 소리쳤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슬람국가(IS) 소속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민간인들이 많이 몰려 있고 상대적으로 경비가 약한 소프트 타깃을 노렸다는 점도 IS 소행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IS는 2015년 프랑스 파리 때 공연장을, 지난해 6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테러 당시 나이트클럽을 각각 공격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범죄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정황도 나왔다. 클럽 사장인 마흐메트 코차르슬란 씨는 “범인은 러시아제 자동소총 칼라시니코프를 썼다”며 “10여 일 전쯤 미국 정보 당국이 연휴 기간에 터키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해 보안 조치를 강화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터키는 지난해 IS와 쿠르드계 무장단체가 저지른 15차례의 테러로 260여 명이 숨지는 등 최악의 해를 보냈다. 이날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는 최근 한 달 사이 터키에서 일어난 네 번째 테러다.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에릭 슐츠 백악관 부대변인을 통해 “무고한 생명이 사망한 데에 애도를 표한다”며 “터키에 적절한 지원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 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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