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는 '악마'다." "코란은 파시스트의 책이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비슷하다." "네덜란드에서 이슬람 학교 및 사원, 히잡 착용을 없애겠다."
이런 막말을 내뱉는 사람이 네덜란드 새 총리가 될 지도 모른다. 3월 15일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54)다. AFP 등 주요 외신은 그가 이끄는 자유당이 하원 전체 150석 중 31~37석을 차지해 마르크 뤼터 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자유민주국민당(23석 예상), 자유민주국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노동당(10석 예상)을 제치고 1당이 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네덜란드 총선, 프랑스 대선, 독일 총선, 이탈리아 총선 등 유럽 주요국에서 줄줄이 선거가 치러져 '슈퍼 일렉션 이어(super election year)'로 불리는 2017년. 가장 빨리 실시되는 네덜란드 총선이야말로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로 가속화된 고립주의 및 포퓰리즘 물결이 국제 정치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알려주는 시금석이다. 반(反) 이슬람주의자로 유명한 그는 어떤 인물이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그를 지지할까.
○ 이스라엘 거주 및 멘토 영향으로 이슬람 혐오
빌더르스는 1963년 네덜란드 남동부 펜로에서 중산층 가톨릭 가정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던 그는 당초 호주를 가려다 돈이 부족해 이스라엘을 택한다. 1981년부터 2년 간 이스라엘에서 거주한 경험은 빌더르스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이스라엘 협동농장 모샤브 여러 곳을 전전하며 생활했고 이 때부터 '이스라엘은 진정한 친구이고 아랍은 적'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귀국 후 건강보험업계에서 일한 그는 1990년 자유민주국민당(VVD) 프레데리크 볼케슈타인 의원의 보좌관이 된다. 그의 멘토 볼케슈타인은 외교정책 전문가로 선동적 언어로 대중을 자극하는데 능수능란한 정치인이다. '대규모 무슬림 이주가 네덜란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볼케슈타인 밑에서 8년간 일한 빌더르스는 그와 함께 이란 시리아 요르안 이집트 이스라엘 등 중동 각지를 돌아다니며 반이슬람 시각을 더 굳혔다.
빌더르스는 1997년 위트레흐트 시의원, 1998년 하원의원에 뽑힌다. 당시만 해도 정치 신인인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2년 자유민주국민당 대변인이 된 그는 반 이슬람 발언으로 눈길을 끌기 시작했고 2004년 자유민주국민당이 이슬람국가 터키의 EU 가입을 지지하자 탈퇴한다.
2006년 그는 자유당(PVV)을 설립한다. 주요 정책은 네덜란드 내 모스크·이슬람 학교·히잡 착용 금지, 유럽연합(EU) 반대, 유로화 사용 중단 등. 이슬람계 네덜란드인의 반발이 거셌지만 창당 첫 해 자유당은 총선 150석 중 9석을 차지했다. ○ 反이슬람 영화 '피트나'로 세계적 논란
그가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시기는 2008년 3월. 그는 반이슬람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17분짜리 단편 영화 피트나(Fitna·아랍어로 내란, 항쟁, 반란, 투쟁을 의미)를 제작했다. 2001년 9·11 테러,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2005년 영국 런던 테러 등 21세기 주요 테러가 코란 및 이슬람주의자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 영화는 전 세계 이슬람국가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영국도 무슬림계 영국인들의 반발을 우려해 그의 입국을 불허했다.
네덜란드 방송사들은 반발을 의식해 이 영화의 방영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영국 웹사이트 라이브리크(liveleak.com)가 이를 공개해 결국 전 세계로 퍼졌다.
피트나 방영 이후 빌더르스는 극단 이슬람주의자로부터 공공연한 테러 대상이 된다. 2010년 이슬람계 호주인 페이즈 무하마드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빌더르스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2013년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그를 살생부 명단에 올렸다. 앞선 2004년 그는 헤이그에서 두 명의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기도 했다.
살해 위협이 본격화한 후 그는 24시간 무장경호를 받고 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사복 경찰과 동행하고 방탄차만 탄다. 헝가리계인 아내 크리스티나와도 사실상 별거 상태다. 그는 1주일에 2번 안전가옥에서만 아내를 만난다. 아내를 포함한 모든 방문객을 철저히 수색하고 사소한 소지품도 일일이 검사한 후 대면한다.
그는 피트나 공개 이후 법정에도 여러 번 섰다. 2011년 6월 이슬람교도에 대한 증오·차별 발언으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4년 "네덜란드 내 모로코인 숫자를 줄이겠다"고 말해 인종차별 및 증오·선동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말 법원은 그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며 벌금 5000유로(약 600만 원)를 구형했다.
▲ 2016년 11월 재판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빌더르스
○ 브렉시트 이어 넥시트(Nexit)?
빌더르스는 철저한 반(反) EU 주의자다. 2016년 6월 브렉시트가 가결되자마자 "네덜란드도 EU 탈퇴(넥시트·Nexit)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고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바로 EU를 탈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EU를 떠나서 무슬림 이민자를 받지 않겠다는 수준도 아니다. 그는 "직장이 없는 이민자,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를 네덜란드에서 추방하겠다. 복지 혜택 또한 네덜란드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만 주겠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가 주도한 헌법 개헌 국민투표 부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EU 완전 탈퇴) 발표에서 드러났듯 EU 국민의 상당수는 EU가 각국 경제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EU 분담금 등으로 세금만 늘어났다고 여긴다. 또한 EU를 지탱하고 있는 솅겐 조약, 즉 가입국 간 완전한 자유통행 보장 조치가 불법 이민자의 유입 통로가 되는 바람에 이들이 자신의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빼앗아갔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9200달러(약 5900만 원·2015년 기준)인 네덜란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2011년 네덜란드 정부가 '2025년부터 노령연금 지급 시기를 기존 65세에서 67세로 상향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 불만이 크게 가중된 상태다. ING는 2017년 네덜란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2.2%보다 낮은 1.6%로 제시했다.
○ 선거 승리 불구 총리 등극은 미지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유당이 3월 총선에서 제 1당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더르스가 총리가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네덜란드가 하원에만 10개가 넘는 소수정당이 있는 전형적 다당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자유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소수당들이 연정을 통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빌더르스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
마르크 뤼터 현 총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유당과 손잡는 일은 없다. 빌더르스와 연합할 가능성은 제로(0)"라며 그의 총리 등극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빌더르스가 총리가 되든 안 되든 이번 선거로 자유당과 그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며 그의 반(反)이슬람, 반(反)난민 발언 수위도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스스로 "네덜란드인 절반은 나를 사랑하고 나머지 절반은 증오한다. 그 중간은 없다"고 말하는 그가 네덜란드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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