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트럼프 시대]전례 찾기 어려운 직설화법 연설
WSJ “선동적 집회 연설 같아”… 우호적 폭스뉴스도 부정적 평가
작성 참여 배넌 “7대 잭슨 이후 노동자 등 소외계층 옹호 첫 연설”
“이게 대통령 취임사라고? 그냥 지난해 대선 유세 아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사를 마치자, 비교적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트럼프는 16분간의 짧은 취임사 내내 미 현대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직설화법을 쏟아냈다.
미국인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미국의 현 상황을 ‘살육(carnage)’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도심의 엄마와 아이들은 가난에 갇혀 있다. 녹슨 공장은 이 나라 곳곳에 묘비처럼 흩어져 있다. (중략) 미국에 대한 살육은 지금 당장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임기 중 협력의 대상인 워싱턴 정치권을 향해서는 국민이 누려야 할 것을 빼앗아 거둬 간(reap)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바로 앞에 공화당 민주당 소속 의원 수백 명을 앉혀 두고서다.
“너무나 오랫동안 워싱턴의 소수 그룹이 정부가 주는 보상을 거둬 갔지만 국민은 그 비용을 떠안았다. 워싱턴은 번창했다. 그러나 국민은 그 부를 나누지 못했다.”
그 후에도 희망보다는 ‘황폐(disrepair)’ ‘쇠퇴(decay)’ ‘상실(dissipate)’ 등 디스토피아적 어휘가 계속 등장했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는 ‘박멸하겠다(eradicate)’라는 표현을 썼다.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수조 달러를 해외에 쓰는 동안 미국의 인프라는 황폐화되고 썩어서 쇠퇴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부와 힘,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선동적인 표현이 쓰였다.
그런 뒤 트럼프는 “오늘 이 시간부로 권력은 워싱턴에서 국민에게 이양된다”라며 “오늘은 국민이 다시 이 나라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주권’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에 기댄 채 철저히 기성 제도권을 겨냥해 온 트럼프의 선동적 포퓰리즘이 그대로 담긴 것이다. 트럼프 뒤편에 앉아 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사 내내 얼굴이 어두워진 채 기가 막힌 듯 종종 하늘을 올려다봤다.
취임사 작성에 참여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21일자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연설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색채를 보여 준 것”이라며 “19세기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를 했던 앤드루 잭슨 대통령(7대) 이후 이런 연설은 없었다”고 자평했다. WP는 이를 토대로 ‘에이브러햄 링컨(16대)의 정당’으로 불리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서 로널드 레이건(40대)의 대선 구호를 흉내 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당선된 트럼프가 민주당 출신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인 잭슨을 연상시키는 취임사로 파격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역사학자들은 “잭슨 대통령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 즉 노동자나 농민을 옹호하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래서 기성 정치권력자 대부분이 그를 싫어했고, 언론도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겐 인기가 높았다”고 평가한다.
대선 과정에서 ‘잊혀지고 소외된 사람을 대변하는 아웃사이더’ 이미지가 핵심인 ‘트럼피즘(Trumpism)’ 신드롬은 ‘잭슨이즘’을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재무부가 ‘20달러 지폐 앞면 모델인 잭슨 대통령을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교체할 계획’을 발표하자 “잭슨도 미국의 큰 성공을 이끈 역사적 인물인데 꼭 이런 식으로 교체해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숀 윌렌츠 프린스턴대 교수(역사학)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는 잭슨 따라 하기에 나섰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잭슨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지만, 트럼프는 지지율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거리 집회에서 나올 법한 연설”이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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