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위 조직이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소수의 여성 고위인사를 말한다. '기념, 상징' 등의 의미를 지닌 토큰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조직사회학 분야의 거장이자 토큰 이론의 대가인 로자베스 모스 캔터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토큰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남성 위주 조직이 소수자의 실질적 권익 증진보다 이를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이용하려는 목적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은 승진 및 보직에서 성차별을 하지 않으며 여성을 대우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함"라고 지적했다.
전체 22명 중 17명의 백인 남성이 포진해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출범 후 여성 및 소수인종 비율이 가장 낮은 트럼프 내각.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억만장자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트럼프 정권은 일레인 차오 교통장관, 니키 헤일리 유엔(UN) 대사, 벳시 디보스 교육장관, 린다 맥마흔 중소기업청장 등을 토큰 여성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이 맡은 보직은 국무, 국방, 재무 등 '내각 속 내각'이라 불리는 힘 있는 직책과는 거리가 있다.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 사람이 대만계인 일레인 차오 교통장관(64). 25일 인준을 통과한 그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노동장관으로 재직했고 이번에 다시 내각에 입성했다. 미 역사상 최초 아시아계 여성 장관이자 두 번째 입각한 유일한 여성이다.
트럼프가 노후 교통기반시설 복구 및 신축에 향후 10년 간 1조 달러(약 1160조 원)의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고, 그의 남편이 공화당 실세인 미치 매코널 켄터키 주 상원의원 겸 원내대표(75)여서 그가 마냥 얼굴 마담으로 지내긴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맡는 자리마다 '미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는 누구일까.
○8세 때 가족과 이민
차오는 1953년 대만 수도 타이페이에서 6자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국공내전 때 장개석 총통을 따라 대만에 온 외성인(外省人)이다. 역사학자였던 부친은 1958년 뉴욕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났다. 3년 후 8세의 차오가 어머니, 두 여동생과 함께 37시간 동안 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차오는 당시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글자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공책에 베껴 썼다. 글자가 아니라 사실상 그림 수준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를 보여주면 아버지가 뜻을 해독해주는 식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맨해튼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맏딸에게 "돈을 버는 것보다 일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배워라. 그리고 절대 악에 물들지 말라"고 가르쳤다. 훗날 차오는 "아버지의 말씀을 신조로 삼고 살아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부시 부자(父子)에게 발탁
19세 때 시민권을 획득한 차오는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 홀요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은행 등 대형 금융회사에서 일했고 아버지의 해운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차오가 공직에 본격 입문한 시기는 1989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36세의 그를 교통부장관으로 발탁했고 2년 후 평화봉사단(peace corp) 단장직을 맡겼다. 당시 그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해 3국에 평화봉사단 프로그램을 정착시켜 친(親)러 성향이 강했던 이 곳에 친(親)미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화당 실력자 남편과의 결혼
그는 40세이던 1993년 당시 3선 상원의원이던 공화당 실력자 미치 매코널과 결혼했다. 법무차관보, 연방판사 출신의 매코널은 그보다 11세 연상으로 재혼이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차오는 결혼 후 성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남편의 정치 활동을 정력적으로 도왔다. 매코널은 선거에서 승리할 때마다 "나의 최대 무기는 일레인"이라고 말했다.
중산층 이민자 출신, 최고 엘리트 교육 이수, 백인 남편과의 결혼 등은 그를 포함해 '타이거 맘'의 전도사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 등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아시아계 여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정권 내내 사실상 공화당 수장 역할을 한 매코널의 부인을 교통장관에 발탁한 것은 그의 남편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고 풀이했다. 공화당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상원을 장악한 매코널을 통해 당의 지원을 얻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뜻이다. CNN은 "차오의 발탁은 '하나 사면 하나 더 주기(Buy One Get One Free)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막내 여동생 앤절라 차오(44)도 마찬가지다. 큰언니처럼 하버드대 MBA를 졸업한 앤절라는 2009년 25세 연상의 월가 거물 브루스 와서스타인과 결혼했다. 안젤라는 초혼, 와서스타인은 네 번째 결혼이었다. 와서스타인은 23억 달러(약 2조6680억 원)의 재산을 지녔지만 안젤라와 결혼한 그 해 심장이상으로 숨졌다.
○중국계, 일본계 장관 잇따라…한국계는 언제?
물론 그의 성공이 단순히 남편 덕만은 아니다. 차오는 1992년부터 4년간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국립 자선단체 유나이티드웨이오브아메리카(UWA) 회장 직을 맡아 이를 해결했고 노동장관 시절 유연화를 골자로 한 규제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 재직 내내 미국 노동조합총연맹(AFL-CIO)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2003년엔 존 스노 당시 재무장관과 버스를 타고 미 전역을 돌며 부시 행정부의 세금 감면 정책을 홍보했다.
이 때문에 차오는 워싱턴 정가에서 '호랑이 부인' '티타늄 여사' '일 중독자'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이민자가 살아남으려면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판 뉴딜정책'으로 불리는 1조 달러 투자의 구체적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등을 감안할 때 차오 휘하의 교통부는 과거와 달리 존재감 있는 부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차오의 성공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도 든다. 중국은 그를 포함해 스티븐 추 전 에너지장관을 배출했다. 노먼 미네타 전 교통장관과 에릭 신세키 전 보훈장관은 일본계다. 한국계 미국인 중에는 눈에 띌만한 미 정관계 고위직이 없다. 이제껏 배출한 한국계 고위직조차 해럴드 고(고홍주) 전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급), 빅터 차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국·일본 담당 국장,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정도가 고작이다. 한국계가 당당히 미 내각에 입성하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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