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미술가 함경아 씨가 이색작품 ‘뮤지엄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박물관에 있을 법한 대형 유리 진열장에 커피잔 후추통 같은 잡동사니를 전시한 것이다. 해외 호텔과 카페에서 그가 슬쩍 챙긴 물건이라니 엄밀히 말하면 장물이다. 개인이 훔친 물건을 전시하는 것과 선진국이 전쟁이나 약탈로 훔쳐간 문화재를 당당히 내보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고 싶었단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소장했던 화가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워의 초상’(1907년)을 유대인 후손이 되찾아오는 실화를 다뤘다. 원소유자의 상속인은 나치에 빼앗겼다가 빈의 벨베데레 박물관이 소장한 그림을 8년간의 소송 끝에 돌려받고 새로운 판례를 남겼다. 이 그림은 2006년 당시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1억3500만 달러에 낙찰돼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걸려 있다.
▷훔쳐간 나라에서나 도둑맞은 나라에서나 약탈 문화재 반환은 민감한 이슈다. 2012년 일본 쓰시마의 한 사찰에서 한국인 절도단이 훔쳐 국내에 밀반입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원래 소유주로 추정되는 충남 서산시 부석사로 돌려주라는 1심 판결이 어제 나왔다. 대전지방법원은 “변론과 현장 검증을 통해 불상이 부석사 소유로 넉넉히 인정된다고 추정된다”며 “역사·종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상 점유자는 원고인 부석사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문제의 불상은 1330년 고려 때 서산에서 제작된 뒤 1526년 이전 왜구가 약탈해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반환 문제가 불거진 뒤 ‘훔친 물건이니 반환해야 한다’ ‘원래 우리 소유인데 왜 돌려주나’ 등 찬반이 맞섰으나 법원이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다. 500년 전 약탈해 갔다는 이유로 21세기의 명백한 장물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국제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볼지 걱정스럽다. 이런 방식이 용인된다면 세계의 박물관은 아수라장이 될지 모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화재 환수는 국제규범에 따라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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