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노골적인 친(親)러시아 및 이스라엘 행보에 급제동을 걸었다. 2일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이나 기존 정착촌 확대는 (중동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지난주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주택 2500채 건설을 승인하며 강경책을 예고한 이스라엘 정부에 자제를 요청했다. 같은날 니키 헤일리 주 유엔 미국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규탄한다"며 "크림반도 반환 전까지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의 대들보를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강력하게 지지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행보는 '극명한 반전'이다. 지난해 12월 말 유엔 안보리가 팔레스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트럼프는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오바마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의 등장을 마음껏 정착촌을 건설해도 괜찮다는 사실상의 '그린라이트'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의 성명이 트럼프가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만난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발표됐다며 압둘라 2세가 지역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도발적 행보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민간단체 '이스라엘 폴리시 포럼(IPF)'의 데이비드 핼퍼린 소장은 "트럼프에 대한 이스라엘 보수층의 환영이 시기상조였을지 모른다는 경고등"이라고 분석했다.
헤일리의 대(對)러 강경 발언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자랑하며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공언해온 트럼프의 입장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헤일리는 이날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서도 "(최근 교전이 일어난) 동부 우크라이나의 비참한 상황을 비춰볼때 러시아를 분명하고 강력하게 규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NN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해당 발언을 승인했다"며 헤일리의 발언이 상부 허가를 받은 사안이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측은 지난달 말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이란의 기업과 단체 20여 곳에 대해 추가 제재를 이르면 3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혀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 합의 파기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NYT는 트럼프가 준비하고 있는 제재는 "약 1년 전 오바마가 부과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며 "(트럼프의)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이 핵합의 자체를 엎겠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NYT는 "이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 반전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임명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한국 방문과 겹쳤다"며 '중도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두 명의 본격적인 활동 시작이 균형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기재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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