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국에선 무력충돌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었다. 트럼프 정권의 막후 실세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고문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미중(美中)이 10년 내에 남중국해에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 같은 예측’을 했다.
미국의 학계는 한술 더 뜬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중국과의 전쟁(War with China)’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2025년이 되면 미국이 승리해도 피해 차이가 (현재보다)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전쟁은 이를수록 미국에 유리하다는 취지다.
양국 모두 전쟁불사 의지
중국 역시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덩샤오핑 집권 시절 내세우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 외교노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은 한다)로 바꾸더니 시진핑 집권 이후엔 대국외교(大國外交)를 공공연히 외친다.
시진핑은 지난해 초 방어 중심의 7대군구(大軍區)를 공격형 연합작전이 가능하도록 바꿨다. 특히 대양해군을 기치로 202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시진핑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기는 군대를 건설하라”고 역설한다. 물론 대상은 미국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트럼프 취임 직후 ‘트럼프 임기 내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는) 실제 일어날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양국의 패권 충돌이 우리를 휘말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랜드보고서가 무력충돌 원인으로 든 북한의 붕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갈등, 대만 문제, 남중국해 분쟁은 모두 동아시아 지역에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중 전쟁이 나면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서태평양 전체가 전쟁터가 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미동맹 강화론부터 균형 외교, 중첩 외교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척을 안 지는 연미화중(聯美和中)론과 미중 양국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연미연중(聯美聯中)론도 있다. 관건은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느냐다. 한미동맹이 강화될수록 중국은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벌써부터 “한국은 미국의 바둑돌”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한중 갈등을 없애기란 어렵다. 미중 양국과 동맹을 맺고 가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싱가포르 외교를 보라
한국은 갈수록 미중 양국 사이에서 ‘괴로운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 편을 들더라도 다른 쪽의 협박과 보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의 외교는 우리에게 시사적이다. 서울시 크기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1994년 미국의 압력에도, 악동(惡童) 짓을 한 미국인 소년에게 태형(笞刑)을 집행했다. 중국의 엄청난 압력에도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자유항행 원칙’을 지지했다. 하나는 주권, 또 하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연관된 문제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역시 주권 문제다.
우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주권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원칙을 정하고 강력히 추진한다면 어떤 압력도 이겨낼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론이 통일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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