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허문명]“美국민은 트럼프에게 北 ICBM 막기위한 ‘행동’을 요구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조지프 디트라니 前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북한통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중국, 유럽지부장을 지내고 국가정보국에서 북한 정보를 책임지는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정보기관에서 일해 온 사람답게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했지만 “북한의 전면적 핵 활동 중단 선언 없이 북-미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어조가 단호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북한통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중국, 유럽지부장을 지내고 국가정보국에서 북한 정보를 책임지는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정보기관에서 일해 온 사람답게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했지만 “북한의 전면적 핵 활동 중단 선언 없이 북-미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어조가 단호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 미국 내 북한통으로 꼽히는 조지프 디트라니 대니얼모건 국립안보대학원장이 한국을 찾았다. 중앙정보국(CIA) 중국, 유럽지부장을 지낸 정보통인 그는 미국 측 6자회담 차석대표, 대북경수로 원전개발사업을 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미국 대표를 지냈으며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6개 미국 정보기관을 관할하는 국가정보국에서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을 지냈다. 지난달 31일 방한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해 외교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만나며 바쁜 일정을 보낸 그를 출국 전날인 1일 만났다. 북한 정보에 밝은 만큼 북한 정세부터 물었다. 》
  
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북 내부 불안정하지 않다

 ―현재 북한 정권은 어떤가.


 “망명한 태영호 공사는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했는데 나는 불안정하다는 신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평양 이외 지역에서는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식량 배급이 잘 안 되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밖에서 보는 것처럼 불안정하지 않다고 본다.”

 ―지난해 10월 21∼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북-미 비밀대화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받은 느낌은 어땠나.

 “민간 자격으로 사적으로 편하게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는 이런 만남을 ‘트랙2’라고 부른다. 북한 주장의 골자는 핵개발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핵무기는 공격용이 아니라 미국의 공격을 막는 전략억지용(strategic deterrence)이라면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을 테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했다.”

 ―당신들은 뭐라고 했나.

 “절대 핵개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 뒤 포괄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선에서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핵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니 핵 활동을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당시는 미국 대통령선거 전이었다. 북한은 임기 말 버락 오바마 정부와는 대화는커녕 관심조차 없다고 했다. 우리는 힐러리 클린턴이든, 도널드 트럼프든 미국의 새 정부와 대화하려면 ‘도발’ 같은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북한은 우리에게 비교적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대화 테이블에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남한을 빼고 만났는데 미국 정부는 향후 북한과 그런 식으로 직접 대화하겠다는 건가.

 “그런 식의 비공식 만남은 지난 3년 동안 6개월마다 한 번씩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도 했고 런던에서도 했다. 멤버는 그때마다 달랐다. 그때마다 한국과도 소통했다. 트랙2는 내가 이걸 주면 저걸 줄 건가 하는 협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미국은 남한을 빼놓고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매우 투명하다. 그리고 이 입장은 명확하다.”

 ―그동안 북한과는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북핵 능력만 가속화하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굉장히 위험한 무기다. 목적은 단 하나다. 전형적인 탄두든 핵이든 미사일에 실어 나르는 것이다. 핵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신속하게 펼칠 것은 명확해 보인다. 협상은 언제나 중요하다. 북한 김정은과 대화가 시작되면 한국도 참여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쿠알라룸푸르 트랙2 같은 것이 공식석상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다. 북한도 트럼프 정부하에서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정확히 탐색하는 게 중요하다.”

 그의 말은 북을 향해 ‘미국이 바뀌고 있음을 냉철하게 파악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

트럼프, 한다면 하는 사람

 ―북핵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핵탄두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때 한국과 일본에 직접적 위협이다. ICBM은 7000∼9000km를 날아간다. 미국에도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내 생각에는 1∼2년 안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3000km까지 날아가는 무수단 미사일이 괌까지 날아가지 않았나.”

 ―미국인들은 북의 도발을 실질적 위협으로 느끼고 있나.

 “최근 미국 내 가장 큰 변화는 ICBM이 대단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많은 미국 시민들이 느끼게 되었다는 거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참을성 있게 북한을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기다려 봤자 우리만 바보가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단지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다. 미 국민들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미국 국민은 트럼프 행정부에 “어떤 식이든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를 만난 날 미 상원 북핵 청문회에선 김정은 암살이 거론됐다. 그만큼 워싱턴의 대북 기조가 초강경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다. “정말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냐”고 묻자 그는 오랜 시간 정보기관에서 일해 온 사람이이서 그런지 신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북 대응의 구체적 방안을 다듬어가고 있다. 일단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이전 정부와는 확실히 다르게 가져갈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북의 섣부른 도발은 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와 북한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있나.

 “만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만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건설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북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즉각 중지하고 비핵화에 대해 재협상할 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야 한다. 제스처가 아닌 희망적 메시지를 미 국민에게 보내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중국은 북핵을 묵인 방조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며 무역도 하고 있다. 중국이 이걸 중단한다면 북한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중국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대북 제재 결의(The UN resolution 2270)에 서명했으니 대북 제재를 주도할 의무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노골적인 반중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될 게 뻔해 보인다. 긴장감이 든다.

 “고작 (취임) 10여 일 지났다(웃음). 중국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채권소유자, 투자자들도 굉장히 많다. 중국과 미국은 자주 만날 것이다. 하지만 핵은 무역과는 다른 사안이다. 북핵 해결을 위한 미국의 중국 압박은 매우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다. 중국도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좀 다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공약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는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본인이 했던 말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다.”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닌가.

 “전쟁은 그렇게 간단하게 발발하지 않는다. 냉전체제가 끝나지 않았는가. 물론 세계적으로 문제는 많다. 러시아, 점점 커지는 중국, 이란, 중동 등등…. 하지만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면한 문제들은 전쟁 아닌 방법으로 풀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 북핵이 제일 풀기 어려운 숙제다. 북핵의 지속 개발은 한국 일본, 심지어는 인도네시아까지 핵 확산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사드 찬성할 것

 ―한국은 알다시피 리더십 공백 상태다. 직접 와 보니 어떤가.

 “지난 몇 달 사이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평화시위를 하는 모습이야말로 살아 있는 민주주의 현장이라고 느꼈다. 북한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중국에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지금 한국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도 그랬지만 한국도 잘 이겨 나가리라 본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방위비 인상 같은 것을 요구할까.

 “대통령이 직접 황교안 권한대행과 전화 통화하지 않았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방한도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굳건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미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다. 한미는 전쟁에서 함께 싸운 혈맹이다. 모든 일이 원만히 진행될 것으로 확신한다.”

 ―야당이 차기 정권을 잡는 상황을 미국은 걱정하고 있나.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 진행한다면, 우리는 강화된 군사력으로 대비태세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국민을 보호해야 하듯, 미국도 미국 국민(주한미군)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핵 억지력 체계도 있고, 미사일 방어체계도 있지만 사드는 필수적인 방어체계다. 야당 인사들도 만나 보았지만 사드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반대라기보다 사드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과연 한국에 정말 좋은 선택일지 말이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누가 집권해도 아마 사드 배치에 대해 찬성할 것이다.”

 이번 매티스 국방장관의 첫 방문국이 한국이었다는 것과 미국 국민들이 북핵 위기를 실감하기 시작했다는 그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한미 안보 이슈가 단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차원이 아니라 북핵 저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군사 외교적 해법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안보 기상도가 요동칠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조지프 디트라니#사드#대륙간탄도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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