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글로벌 걸크러시]멜라니아, 미셸의 백악관 텃밭정신 계승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15시 14분


백악관 텃밭을 설명하는 미셸 오바마

“내가 당선된다면, 미셸의 백악관 텃밭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는 모든 것을 뒤엎을 것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선거전 내내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가꾸던 백악관 내 텃밭이 없어질 것이란 얘기였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후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된다) 시나리오엔 ‘미셸의 텃밭 제거’가 심심찮게 올랐다. 영부인 멜라니아는 당분간 ‘뉴요커’로 남겠다고 선언해 이런 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미국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가 호미를 들고 밭 매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고 백악관의 텃밭은 전임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공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멜라니아가 미셸의 텃밭을 ‘계승’하기로 했다”는 것이 13일 미국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의 뉴스로 실렸을까. 멜라니아의 선임 고문이자 비공식 대변인인 스테파니 윈스턴 월커프는 “엄마이자 미국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멜라니아 여사가 백악관 정원, 특히 채소 텃밭과 로즈 가든의 지속과 보존에 전념할 것”이라는 멜라니아의 뜻을 전했다.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플로리다 주 딜레이비치의 ‘모리카미 박물관’ 정원을 둘러보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멜라니아 트럼프와 텃밭은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유기농 샐러드는 열심이 먹을지언정, 유기농 채소를 가꾸려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 퍼스트레이디에게 텃밭이란

백악관 정원이 처음 만들어 진 시기를 딱 잘라 말할 순 없다. 1800년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백악관 안에 채소밭을 만들어 가족과 손님들을 대접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영부인의 상징’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미셸 이전에 ‘텃밭 안주인’으로 인정받은 퍼스트레이디는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노어 여사다. 그는 대공황기에 취임하면서 미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이 텃밭을 ‘빅토리 가든(Victory Garden)’이라고 불렀다. 엘리노어 여사의 애국운동 일환으로 시작된 ‘텃밭 가꾸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약 2000만 가구가 동참했다고 전해진다.

미셸처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커리어우먼이 평소 텃밭을 가꿔봤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엘리노어 여사가 그랬듯, 백악관 텃밭을 사회활동의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했다. 백악관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들 중엔 구릿빛 피부에 잔근육이 자리잡은 팔뚝을 드러내며 삽질을 하는 미셸의 모습이 담긴 것들이 있다.

● ‘Let’s Move‘로 더 커진 백악관 텃밭

백악관에 들어온 직후 102㎡ 짜리 텃밭을 만든 미셸은 퍼스트레이디로서 소아비만 퇴치와 미국민 식습관 개선을 역점사업으로 주력하면서 이를 158㎡로 확장했다. 아이들을 위해 더 건강한 미국을 만들자는 ’Let‘s Move’ 캠페인의 일환으로 그녀는 백악관의 텃밭에서 자란 푸른 채소를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미셸은 유기농 텃밭을 가꾸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백악관의 잔디를 제거하고, 흙을 보충한 뒤 워싱턴 근처 체서피크만에서 가져온 게껍질 가루와 석회 등을 섞어 땅에 힘을 불어넣었다. 또 인공퇴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백악관 정원잔디를 깎아 얻은 풀로 영양을 공급했고, 해충은 무당벌레 같은 자연 천적을 이용해 없앴다.

텃밭은 모두의 공간이었다. 미셸이 주도해 만들었지만, 백악관 주방 스태프와 정원 관리사들이 밭일을 함께 도왔다. 밭 매는 일엔 오바마의 두 딸도 참여했다. 백악관 근처 뱅크로프트 초교 학생들이 일일체험 형식으로 농사에 함께하기도 했다. 미셸은 자신과 주변인이 정성스럽게 만든 채소를 밥상에 올리며 건강한 식단을 솔선수범해 보였다.
● 멜라니아…과연?

앞서 설명했듯 백악관 안주인에게 ‘텃밭’은 단순한 밭떼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국민을 향한 퍼스트레이디 활동의 플랫폼이며, 건강하고 부지런한 국가지도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멜라니아가 이런 정신까지 계승할 수 있을까. 앞으로 멜라니아의 텃밭이 어떻게 꾸며질지 기대해본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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