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글로벌 걸크러시] 우버 ‘성희롱’ 알린 글에 실리콘밸리 ‘발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14시 36분


지난해 12월 우버에서 퇴사한 미국 여성 수전 파울러 리게티의 블로그 글로 자유와 혁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실리콘밸리가 발칵 뒤집어졌다. 우버에 입사한 직후부터 직장 상사에게서 성희롱을 당했고, 이를 인사팀에 알렸지만 가해자 처벌은커녕 자신만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내용이었다.

19일 블로그에 올린 글이 퍼지면서 인터넷에선 ‘우버 앱을 지워버리자(#deleteuber)’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곳곳에서 “우리 회사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내부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우버 최고경영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경제자문단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조사에 착수했다.

유명한 여성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겪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용기를 갖고 알리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리게티 같은 여성이야말로 ‘걸크러시’의 주인공이다. 아래는 그녀가 19일 올린 블로그의 내용을 번역·재구성한 것이다.
제목: 2017년 2월 19일 어느 여자의 고백

다들 알다시피 난 12월에 우버(Uber·차량공유서비스 업체)를 떠나 1월부터 새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를 관둔 2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 회사 왜 떠났어?” “회사생활은 어땠는데?”

참 말하기도 두렵고, 힘들고, 무섭기까지한 그 이야기를 이제 꺼내보려 한다.

난 2015년 11월 우버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모이면 우리의 일에 관해 토론했고, 나는 그곳에서 정말 들어가고 싶던 팀에도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2주간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뒤 나는 본격적으로 공식업무를 맡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악몽이 시작됐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회사 매니저가 사내 메신저로 뜬금없이 “나는 개방적인 사람이야”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는 새 파트너를 찾았는데, 나는 아직 못 찾았다”며 “성관계할 파트너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노골적으로 내게 ‘잠자리 상대’가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우버라는 회사는 평판이 좋은 곳이었기에, 나는 의심없이 이를 회사에 보고했다. 대화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인사팀에 보고하면 모든 상황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정도 상식은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인사팀은 물론, 고위직들 모두 이것이 성희롱이라는 것은 인지했지만 그에게 ‘경고’를 줄 뿐 더 이상 징계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고위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성과가 좋은 사람이야”

윗사람들 눈엔 내가 당한 그 일이 ‘어쩌다 저지른 실수’로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무고한 실수’로 그를 처벌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해야만 했다. 다른 팀에 옮겨서 그와 더 이상 마주치지 않거나, 앞으로 인사상 보복을 감수하며 그를 팀의 상사로 모시며 버텨내는 것. 내가 이 팀의 전문가인데, 다른 곳에 갈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을 재차 설명했지만, 그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실수로 한번 저지른 일로 그(가해자)의 커리어를 망치고 싶지 않아요.”

결국 내가 팀을 떠났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됐다. 회사에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여자들이 여럿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수한 것’이라던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나에게 저질렀던 행동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의 상습적인 범행을 다시 한 번 보고했지만 우버는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내가 우버에 합류할 때만해도 여자는 25%였지만, 1년 만에 퇴사할 땐 6%로 떨어졌다. 이유는 자명하지 않은가. 우버란 조직은 혼돈상태이며 성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다. 결국 새 일자리 제안을 받고 그 조직을 떠날 때 나는 팀에 150명이 넘는 엔지니어 중 3%만이 여성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됐다.

우버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참 소중했다. 세계적인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했으며,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조직에서 일했던 것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특이하고도 이상했던 경험에 대해선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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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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