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혐의가 인정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널드 창(曾蔭權·72) 전 행정장관이 중국 국민과 홍콩 시민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점이다. ‘홍콩기본법’은 (최고 권력자인) 행정수반이 청렴하고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해 직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홍콩 고등법원은 22일 창 전 장관(2005∼2012년 재임)에게 부패 혐의로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더 엄격하게 법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홍콩 행정수반이 구속돼 실형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천칭웨이(陳慶偉) 재판관은 “최고위 인사가 이처럼 추락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창 전 장관의 혐의는 행정장관 재임 시절인 2010년 12월 중국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 시의 빌라 한 채를 리스하면서 이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래 상대는 디지털 방송 면허 등을 신청한 라디오 방송 웨이브 미디어(현 DBC 방송)의 대주주 빌리 웡(黃楚標). 뇌물이나 편의 제공, 구체적인 이득 획득 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심이 갈 만한 인물과의 부동산 거래 접촉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재판부는 5년간 행정장관으로서 기여한 점을 들어 당초 30개월에서 20개월로 감형했다고 설명했다. 창 전 장관은 부주의해서 신고를 누락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은 유죄를 인정했다. 창 전 장관 측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홍콩과기대 추이다웨이(崔大偉·중국정치) 교수는 “창 전 장관에 대한 유죄 판결은 홍콩의 독립적인 사법 체계가 잘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추이 교수는 2014년 ‘우산 혁명’ 시위 진압에 나선 7명의 경찰관에게 최근 각각 2년형이 선고된 것도 ‘홍콩 사법 독립’의 예로 들었다.
추이 교수는 다만 ‘중국과 관련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지적한 것처럼 올 1월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대륙으로 연행돼 소식이 끊기는 등 홍콩기본법의 근간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침해되고 있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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