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프로슘(dysprosium)이라는 광물이 있다. 원자번호 66번, 원소기호는 ‘Dy’이다. ‘얻기 어렵다’는 뜻의 그리스어 디스프로시토스(dysprositos)에서 이름이 유래할 정도로 귀한 대표적인 희토류다.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 모터나 풍력발전기 터빈 같은 친환경 동력제품 제조기업에는 필수 원자재 중 하나다.
이런 제품에 들어가는 전동 모터의 경쟁력은 내장된 자석이 1000도가 넘는 고온에도 얼마나 성능을 잘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다. 열에 약한 자석에 디스프로슘을 입히면 내구성과 성능이 몇 배로 강해진다. 현재 세계에서 공급되는 디스프로슘의 95% 이상은 중국에서 나온다.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은 디스프로슘 같은 희토류 광물을 전략자원으로 삼아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잡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2010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디스프로슘이 문제가 됐다. 중국이 일본에 디스프로슘 수출 물량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당연히 일본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외상과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장이 직접 중국을 찾아가 ‘수출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일본이 ‘디스프로슘이 필요 없는 전동모터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노력의 결과는 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자동차업체 혼다가 2012년 디스프로슘을 30% 덜 쓰는 하이브리드차 모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 정부는 히타치, 미쓰비시, 도요타 등에도 기술 개발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혼다는 디스프로슘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터용 자석을 세계 최초로 내놨다. 그 사이 중국은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제기한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서 패해 수출 고관세 조치를 풀어야만 했다.
양국 간 희토류 전쟁은 ‘기술을 가진 자가 최후의 승자’라는 산업계의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디스프로슘 때문에 중국에 저자세를 취하던 세계 각국은 조만간 희토류를 쓰지 않는 모터 제조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고개를 숙여야 할 상황이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희토류가 있다”고 큰소리치던 덩샤오핑이 살아 있었다면 말문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본이 디스프로슘 독립에 성공한 사이 한국은 변변한 기술 하나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은 2009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희소금속 소재산업 종합대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3000억 원을 들여 40대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정부의 근시안적 태도가 문제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희토류 가격이 하락하자 굳이 기술 개발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손을 놔 버린 것이다. 지난 정부의 자원외교를 두고 현 정부와 정치권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자원과 관련된 모든 정책이 ‘올 스톱’된 탓도 컸다.
부존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한국이 대국(大國)의 횡포에 굴하지 않을 강한 경제 체질을 다지려면 무엇보다 기술 자강(自强)이 중요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도 이런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당장 중국인 관광객이 끊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백년대계를 갖고 추진해야 할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게 더 큰일이다. 머지않아 중국에 기술력이 따라잡혀 그들이 기술로 한국을 윽박지르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중국발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노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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