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대통령’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의 첫 정상회담이 1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다. 당초 14일로 예정됐지만 미 동부에 내려진 눈폭풍주의보 때문에 연기됐다.
하버드대 니컬러스 번스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은 트럼프 정권 초기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언론은 두 정상의 만남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정치 경험, 스타일, 정책 관점, 어떤 분야에서도 공통점 하나 없는 두 사람’(USA투데이), ‘기묘한 커플’(블룸버그통신)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메르켈은 조용하고 섬세한 스타일인 반면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는 즉흥적이고 급하게 반응하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용적인 메르켈과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가 어떻게 공통점을 찾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대선 전부터 메르켈에 대해 “독일을 망치고 있다” “재앙적 실수를 했다”고 폭언을 퍼부어 두 사람 사이 감정의 골도 깊다. 당선 후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 증액 필요성, 과도한 독일의 대미흑자 문제, 이민 포용정책 등에 대해 사사건건 비판했다.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어야 하고, 메르켈은 9월 총선을 앞두고 미국으로부터 실리는 챙기되 할 말은 하는 모양새를 국내에 보여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메르켈은 13일 기자들에게 “직접 마주 보고 하는 대화는 언제나 (다른 곳에서)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회담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독일 언론은 2003년 미독 사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을 떠올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2001년 9·11테러 후 이라크전을 앞두고 동맹국에 참여를 촉구한 부시를 향해 슈뢰더는 “내가 총리인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나는 리비아, 쿠바, 그리고 독일이 어떤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나라라고 믿는다”며 독일을 전통적인 적성국가와 함께 통칭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냉랭했다.
슈뢰더에 이어 집권한 메르켈은 부시와 상당히 잘 지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는 2013년 미국의 독일 도청 사실이 드러나면서 잠시 소원해졌으나 이후 대러시아 정책,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에서 찰떡궁합을 보였다.
독일에선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이 연기되자 “메르켈이 출장 운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독일 유력 매체 슈피겔온라인은 메르켈이 2주일 전에도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의 기관지염 악화를 이유로 초청을 취소했었다며 “(메르켈은) 운이 따르질 않는다”고 비꼬았다.
이 매체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트럼프와 회담을 했어도 본전도 못 찾은 점을 주목하며 회담 성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아저씨처럼’ 메이 총리의 손을 토닥거려 미영 우호 관계를 확인하고 아베 총리와는 ‘강력한 악수’로 양국 관계의 굳건함을 과시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 정상들도 트럼프와 메르켈의 회담에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포퓰리즘 확산으로 궁지에 몰린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메르켈에게 NATO에 대한 합리적인 방침을 밝혀 유럽과의 동맹에 확신을 주길 바라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3일 “유럽에 있는 미국의 핵심 우방들이 안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욱 공포에 떨게 될지는 트럼프가 말투에서조차 메르켈을 얼마나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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