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 ‘재난 관측소’ 역할 하는 와플하우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5일 11시 37분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와플하우스’의 공동 창업주 조지프 로저스가 3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와플하우스는 조지아 주 등 25개 주, 2100개 매장 중 80%를 본사가 직접 운영한다. 직원만 3만 명이 넘는다. 연 매출은 약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에 미국에서 47번째로 규모가 큰 체인이다. 친소비자 성향의 지역 밀착형 경영으로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관측소 역할마저 담당한다.

● 부동산 거래로 맺은 ‘인연’

로저스는 1919년 테네시 주 잭슨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공항 시절 일자리를 잃었다. 로저스는 고교를 졸업한 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미 육군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종전 이후 그는 1947년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토들하우스’에서 요리사로 변신했다. 토들하우스는 멤피스에 거점을 둔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그는 1949년 지역 매니저로 승진했다.

로저스는 같은 해 조지아 주 애틀란타의 외곽인 애번데일 에스테이츠에서 주택을 변호사인 톰 포크너에게 구입했다. 당시에는 단순한 집 구매자와 매도자의 만남은 운명을 결정했다. 로저스는 맥도날드 등과 달리 테이블서비스를 제공하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을 구상했다. 포크너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동업을 제안했다. 로저스가 주방을 책임지고 포크너가 경영을 맡았다.

1955년 노동절 애번데일 에스테이츠에 와플하우스의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포크너는 초기 16가지 메뉴 중 가장 수익이 큰 와플의 이름을 따 상호를 와플하우스로 정했다. 와플은 특성상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테이크아웃 보다는 식당에서 먹는 게 더 편했다. 로저스와 포크너는 첫 매장을 연 뒤에도 각자의 일에 매달렸다. 로저스는 토들하우스에서 계속 일했고 포크너는 부동산중개인을 했다. 하지만 1960년 토들하우스의 경영이 어려워졌고 이들의 4호 매장까지 문을 열자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진출하며 와플파우스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 매장은 400개로 늘었고 1990년대 1000호 점을 냈다. 와플하우스는 미국 외식업계의 계란 소비량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한살 차이의 로저스와 포크너는 2010년대 초반까지도 매장에 종종 나와 사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이들은 반세기 이상 동업자의 관계를 이어오며 우애를 다졌다.
왼쪽부터 톰 포크너, 조지프 로저스. 출처 와플하우스 웹사이트.
왼쪽부터 톰 포크너, 조지프 로저스. 출처 와플하우스 웹사이트.

● 재난관측소 역할까지 담당

와플하우스의 경쟁 기업인 ‘아이홉’은 세월을 거치며 고객 취향에 따라 메뉴를 크게 바꿨다. 그러나 와플하우스는 첫 메뉴를 현재까지 고수하며 브랜드 관리에 충실하고 있다. 주로 미국 남부지역의 도로변에 자리잡은 와플하우스 매장들은 한결같이 커다란 노랑색 간판을 내걸고 옛 향수를 자극한다. 매장에는 흘러간 팝을 들을 수 있는 주크박스(동전을 넣으면 유행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기계)까지 설치돼 있다. 1996년 개봉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틴컵’에서는 배우들이 와플하우스를 ‘와플을 주 메뉴로 취급하는 임대료가 저렴한 길가에 세워진 카페’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와플하우스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365일 문을 닫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남부에서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사망하는 등 흑인의 인권운동이 활발해지며 폭동도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와플하우스는 절대 문을 닫지 않았다.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들은 이런 와플하우스 한결같은 정책에 감사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와플하우스 매장의 영업 여부에 따라 특정 지역의 피해 정도를 가늠하는 ‘와플하우스 지표(Wafflehouse Index)’까지 만들었다.

특히 와플하우스는 플로리다, 미시시피 등 자연재해가 잦은 남동부에 매장이 집중돼 있다. FEMA 직원들은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와플하우스 매장에 전화를 걸어 영업 여부, 판매 메뉴 등을 확인하고 인근 지역의 피해 상황을 파악한다. 이후 피해 정도에 따라 지표를 색깔별로 구분한다. 식당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전기, 물이 공급되기 때문에 피해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녹색 지표로 표시한다. 식당이 문을 열었지만 일부 메뉴만 판매한다면 황색 지표, 심각한 피해로 식당이 문을 닫으면 적색 지표로 설정한다. 애플하우스는 재난 대비 역할까지 맡으면서 사회공헌활동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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