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까지 3연임을 꿈꾸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63)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인 아키에 여사(55)가 명예교장이던 모리토모(森友) 학교법인이 총리 부부에 로비를 벌여 헐값에 국유지를 학교 부지로 매입했고, 아베 본인은 물론 정권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파문을 일으켜서다.
‘가정 내 야당’ ‘남편의 정치적 비밀병기’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리던 아키에 여사. 그는 한류스타 고 박용하의 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 원자력 발전소·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소비세 인상 등 남편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등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정치인 아내의 새로운 롤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이제 남편과의 이혼설에도 휩싸인 그는 누구일까.
▲ 2015년 신년 인사를 하는 아키에 여사
○ 제과회사 상속녀
아키에 여사는 196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 이름은 마쓰자키 아키에. 모친은 일본 최대 제과회사 모리나가(森永)의 공동 창업주 모리나가 다헤이의 딸, 부친은 모리나가제과 임원을 지낸 마쓰자키 아키오다.
모리나가 제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밀크 캬라멜과 ‘옷톳토’ 스낵 등을 생산한다. 모리나가와 기술 제휴를 한 오리온은 옷톳토를 ‘고래밥’으로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자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일관제 학교 세이신(聖心)에서 초등학교부터 전문대까지 마쳤다. 세이신은 쟁쟁한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다. 미치코 일왕비, 미치코 왕비의 사촌동서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도 세이신 동문이다.
그는 졸업 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에 입사했다. 그는 하라주쿠의 한 술집에서 친구 소개로 아베 신타로 외상의 차남 아베 신조와 만난다. 소개팅 첫날 30분이나 지각했지만 아베는 오히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에 반했고 둘은 1987년 6월 결혼했다.
일본 정계에는 “국회의원에겐 3개의 ‘반(バン)’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반(지역 기반), 간판(인지도), 가방(돈)을 의미하며 3단어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 유래했다. 외조부와 외종조부가 총리, 조부가 중의원, 아버지가 외무상인 아베는 지역기반과 인지도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재력가 아내와 결혼해 3반을 완성한다.
○ 정치인 아내의 삶
불과 25세에 정치 명문가 며느리가 된 아키에 여사는 불임과 고부갈등으로 결혼 초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시어머니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자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장녀 요코(89).
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정치인인 요코 여사는 정치인의 배우자를 숙명으로 여겼다. 그는 아베 총리가 소년일 때 도쿄에 세 아들을 놔두고 늘 남편의 지역구 시모노세키에 머물렀다. 바쁜 남편 대신 지역구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총리가 된 아들의 식사를 직접 챙긴다.
깐깐한 시어머니와 재벌가 출신 톡톡 튀는 젊은 며느리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요코 여사는 결혼 초부터 “염주를 쥐는 방식이 틀렸다” “치마가 너무 짧다”고 며느리를 훈계했다.
아들 부부의 불임은 고부갈등을 더 키웠다. 혈통을 중시하는 요코 여사는 막내아들 노부오를 친정 기시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아베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도 기시 가문에서 태어나 사토 가문으로 양자를 갔다. 시어머니는 정략결혼과 입양을 통해 세습 정치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며느리는 달랐다.
아키에 여사는 2006년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살면서 어마어마한 압력에 시달려왔다. 불임을 알았을 때 남편은 양자를 들이자고 했지만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내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 술집 개업
아키에 여사는 2012년 10월 도쿄 금융가 간다 뒷골목에 일본식 선술집 우즈(UZU)를 개업했다. 우즈는 일본어로 ‘소용돌이(渦)’를 뜻한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 간의 짧은 총리 생활을 한 아베는 당시 5년 간 와신상담한 끝에 총리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간 나오토 당시 총리의 실정으로 복귀 가능성이 높았다.
요코 여사는 “남편이 총리 재도전을 앞뒀는데 술집 개업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지만 며느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베 총리는 아내에게 ‘가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건 후 개업을 허락했다. 2007년 총리 사퇴 당시 심각한 위궤양에 시달렸던 아베 총리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반면 아키에 여사는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술집 개업 두 달 후인 2012년 12월 아베는 다시 총리에 오른다.
그는 2015년 9월 이 술집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렸다. 여성지 주간세븐은 ‘아키에 여사가 동갑내기 유명 기타리스트 유부남 호테이 도모야스가 우즈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가 술에 취해 호테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고 보도했다.
아키에 여사는 부친이 한국계인 호테이의 오랜 팬이었다. 그의 콘서트장을 자주 찾았고 2013년 콘서트 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총리실은 이 스캔들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반감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 모리토모 스캔들
일본 우익단체 ‘일본회의’ 임원 가코이케 야스노리가 이사장인 오사카 소재 모리토모 학교법인.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옛 일본 군가를 가르치고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는 등 우익 성향 교육행태로 비판받아왔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약속을 잘 안 키는 민족”이라는 발언으로도 물의를 빚었다.
모리토모는 지난해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오사카 한복판의 국유지를 감정가 약 100억 원의 13%에 불과한 1억3400만 엔(약 13억 원)에 매입했다. 올해 초 일본 언론이 헐값 매입 논란을 집중 보도하면서 추가 의혹이 속속 등장했다.
매각 담당부서 재무성은 ‘해당 부지에 폐기물이 많았고 이 처리비를 모리토모 측이 부담하기로 해 싸게 팔았다’고 주장했지만 폐기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매각협상 기록을 담은 정부 문서도 이미 폐기됐음이 드러났다. 아베의 최측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한때 이 학원의 고문 변호사였던 것도 밝혀졌다.
아키에 여사 측은 “2014년 4월 모리모토 소속 유치원을 찾았다. 당시 ‘아베 총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답한 유치원생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모리모토 측이 명예교장을 부탁해 거절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9월 이 유치원에서의 강연을 통해 “모리토모 유치원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대단히 멋지다. 남편도 이곳 교육 방침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스캔들을 다루는 아베 정권의 태도다. 아베 총리는 2월 17일 국회에 출석해 “우리 부부가 관계가 있다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문 변호사인 적이 없었다던 이나다 방위상의 거짓말이 탄로나고 15일 파문 당사자인 가고이케 이사장까지 돌변하면서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는 독립 언론인 스가노 다모쓰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설립 과정에서 아베 총리로부터 기부금 100만 엔(약 1000만 원)을 받았다. 그가 아키에 여사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 가고이케 이사장과 스가노 씨의 인터뷰
○ 운명의 23일
가고이케 이사장은 23일 국회에 출석해 이 문제에 대해 정식 증언한다. 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총리 사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총리 직을 유지한다 해도 과거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한때 60~70%를 넘나들던 아베 총리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다.
이 와중에 일본 대중 주간지 ‘주간현대’는 총리 부부의 이혼설까지 제기했다. 주간현대 측은 “아베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비록 아내라 해도 자신의 꿈을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내와 열렬한 팬이던 극우인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아베 총리. 과연 그는 총리 직을 유지하고 아내와 예전의 금슬을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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