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차량테러/동정민 특파원 현장 르포]
런던시민-관광객 무방비로 당해… 테러차량 피해 강에 뛰어들기도
의사당 앞 철책 들이받고 멈춰
테러범 흉기로 의사당밖 경찰 공격… 로비에 있던 메이 총리 긴급 대피
범인, 현대車 i40 빌려 테러 이용
23일 오전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지붕 위에 게양된 국기는 절반쯤 내려와 있었다. 영국 민주주의 상징을 노린 테러가 발생하고 하룻밤을 보냈지만 런던은 충격에서 완전하게 헤어나진 못했다. 주변은 멈춰 있었다. 의사당 좌우로 보홀에서 임바크먼트까지 템스 강 2마일(3.2km)이 모두 통제됐고 헬기가 연신 하늘을 날아다녔다.
매일 아침 템스 강변을 조깅한다는 데이비드 포터 씨는 테러 현장 부근에서 만난 기자에게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런던의 심장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치가 떨린다”며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테러리스트이자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경악했다.
○ 다리 위 차량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56명이 숨진 2005년 7월 런던 지하철 연쇄폭탄 테러 이후 근 12년 만에 런던을 다시 공포에 떨게 한 이번 테러는 22일 오후 2시 40분경부터 회색 차량이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도로가 아닌 인도로 돌진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지난해 7월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 당시 “질주하는 트럭에 사람들이 볼링 핀처럼 쓰러졌다”는 증언에 이어 이번 런던 차량 테러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 이스마일 씨는 “사람들이 축구공처럼 날아다녔다”고 표현했다. 한가로이 템스 강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던 런던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한 여성은 돌진하는 차량을 피해 강으로 뛰어들었다가 구출됐지만 중태다.
좁은 다리에서 수많은 인파가 급하게 대피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한국인 관광객 5명도 다쳤다. 특히 박모 씨(67·여)는 대피 과정에서 넘어져 뇌출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국인 2명은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퇴원했고, 또 다른 2명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신혼여행으로 프랑스 파리를 피해 런던에 왔다는 진규옥, 신다례 씨 부부는 기자에게 “런던에서 테러가 발생해 한국인이 다쳤다는 말에 너무 놀랐다”며 “이제 유럽에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 3명과 런던 대학생 4명도 차에 치여 부상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부상자의 국적도 다양했다. 영국 정부는 23일 테러로 인한 부상자들에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한국, 독일, 중국,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국적자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 경찰관 희생에 온 국민 애도
벨기에 브뤼셀 테러 1주년인 이날 벌어진 런던 테러는 웨스트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정오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모든 하원의원 앞에서 ‘질의응답’(PMQ)을 갖는다. 목소리를 높이며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는 이 행사는 타협과 합의 정신을 강조하는 영국 민주주의 상징으로 꼽힌다. 차량 테러가 벌어졌을 당시 막 PMQ를 끝낸 메이 총리는 의사당 로비에 있다가 재빨리 총리관저로 대피했다. 의원들은 추가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 때문에 4시간 넘게 의사당 내부에 고립돼 있어야 했다.
용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경찰관 키스 파머(48)의 희생에 온 영국 국민이 애도했다. 영국 왕립포병대 출신으로 15년 동안 런던경찰청에서 근무한 파머는 교대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기 직전 변을 당했다. 당시 국회의사당 경호대는 무장과 비무장 경찰로 나뉘어 근무 중이었는데, 파머는 비무장 경찰이어서 용의자의 흉기 급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런던 대테러 책임자인 마크 롤리 치안감은 “군 시절부터 25년 동안 파머를 알고 지냈다”며 “사랑스러운 친구이자 동료, 훌륭한 가장인 그의 희생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애도했다. 또 차량에 치여 사망한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인 고교 교사 아샤 프레이드(43)였다. 프레이드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변을 당했다.
○ IS, “우리가 했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국가(IS)에 심취한 ‘외로운 늑대’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IS와 연계된 아마끄 통신은 23일 IS가 이번 런던 테러의 배후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연합국들을 노리라는 (IS의) 요구에 따라 수행됐다”며 IS 전사들이 의사당을 공격했다고 전했다. 또한 민간인들을 향해 트럭을 돌진시키는 것은 IS가 프랑스 니스와 독일 베를린 등에서 벌인 과거 테러들과 그 수법이 일치한다.
영국 당국은 용의자가 이슬람 테러리즘에 심취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신원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은 “이 공격은 어떤 형태로든 이슬람 테러리즘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가 23일 의회 연설에서 “용의자는 영국 태생이며 MI5가 용의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MI5는 영국의 국내정보 전담 정보기관이다. 그는 “용의자는 수년 전 과격 테러리즘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으나 그는 ‘부수적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검은색 수염을 기르고 피부색이 어두운 40대 남성 용의자가 들것에 실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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